본문 바로가기

작가들의 글/허성환

유치한 싸움, 텃세는 이제 그만 _ 한중법률신문

유치한 싸움, 텃세는 이제 그만

 

  

 

모처럼 만난 지인들과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중국식당을 찾았다. 가는 날이 장날인지 시끌벅적 분위기가 수상하니, 사람들 시선은 온통 출입문 쪽을 향해있다. 자리 잡고 앉은 지 채 얼마 되지 않아, "야 이 ××야" " 뭐라고 이 ××야" 식당 문 밖에서 고성이 들려왔다. 쏠린 시선 애써 외면하려 화제를 돌려봤지만, 신경 쓰여 영 대화가 되지 않았다. "뭔 일이래? 하필이면 우리 들어오자마자 싸우고 난리야" 짜증 섞인 말 한마디 내뱉고 밖으로 나가봤다. 불구경 만큼이나 재미난 구경이 싸움구경 아니라던가. 재미라기 보단 오가는 고성 때문에 대화가 되지 않아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냥 구경하자’는 심정이었다.

 

50대 중반쯤 되는 남자 둘 간의 싸움이었다. 자세히 들어보니 한명은 중국동포 한명은 한국인이었다. 멱살잡이까지 오가는 게 사소한 말다툼 같지는 않았다. 주변은 이미 구경꾼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던지 누구 하나 선뜻 나서서 말리지 않았다. 그렇게 몇 분이나 흘렀을까. 옆에서 지켜보던 한 여자 분이 더 큰 소리로 뭐라고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동포가 화장실 좀 쓸 수도 있지, 그까짓 걸로 뭔 난리야?" 식당 옆 슈퍼마켓 아주머니가 한국인을 향해 큰소리로 나무라는 것 아닌가. 큰 소리로 싸우던 목소리가 아주머니의 한마디에 갑자기 조용해진다. 원인이 궁금하던 차에 그 때서야 원인을 파악할 수 있었다. 말리던 아주머니가 큰 소리로 상황을 요약해 준 셈이다.

 

그 이후에도 아주머니는 더 큰 목소리로 싸움을 말리고는 이내 우리 곁으로 다가와 한심하다는 듯 하소연을 하였다. "슈퍼마켓 주변에 중국식당이 많아 중국동포들이 건물 출입을 많이해요. 슈퍼 단골 손님들이 가끔 화장실을 이용해도 되냐고 하는데, 나야 당연히 이용하라고 하죠." 이날 싸움은 화장실에서 볼 일 보던 건물 내 상점 직원과 식당 손님인 중국동포 간에 일어난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가 치우는 것도 아니면서 괜히 동포들이 화장실만 쓰면 뭐라고 한다니까? 나도 한국 사람이지만 그건 너무하잖아요." 한마디 덧붙인다. 자세한 내막까진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었지만,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아주머니도 나와 같은 심정이었으리라.

 

6~7살 정도, 내 어린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낯선 동네로 집을 이사한 며 칠 뒤 일이다. 집을 나서서 동네 한바퀴 구경하려는데, 지나가던 나를 붙잡고는 다짜고짜 "여기 못 지나가" 라며 내 나이 또래 사내아이가 막아서는 것이 아닌가. 황당하기도 하고 짜증나기도 했지만, 그냥 옆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돌아가려는 나를 다시 막아 세우고는 이 길로는 지나가면 안된다는 것이다.

 

나 : 왜? (짜증 버럭)  

걔 :  여기가 우리 아빠 가게니까 이 길은 못가 

나 :  가게가 니네 아빠 가게지 길이 니네 아빠꺼야? 

걔:  아무튼 안 돼!

 

그렇게 시작된 싸움이 어떻게 끝났는지는 기억안난다.

 

이 날의 싸움을 지켜보며, 어린 시절 내가 했던 그 싸움이 생각나 피식 웃음이 났다. ‘어른이나 애나 싸움판에서 유치해지는 건 매한가진가?’ 여긴 내가 사는 동네니까 당신은 이방인이고, 이방인이면 남의 땅도 밟지 말고 살라는 것인가. 술집이 많은 건물 특성상 화장실이 쉽게 더러워지고, 더러워진 화장실을 이용하는 게 여간 짜증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식당이 많아 중국동포들의 이용이 많은 것 뿐이지, 한국 술집이 많았다면 그 화장실이 더 깨끗했을까? 그리고 한국인들이 그렇게 더럽혔다면 과연 멱살잡이 싸움까지 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다.

 

어릴적 내가 겪었던, ‘이 길은 못 지나간다’던 그 어린 아이의 텃세. 그 텃세를 다 큰 성인인 우리가 또 다른 형태로 저지르고 있는 건 아닌지, 참으로 부끄럽다.

 

한중법률신문 칼럼

 허성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