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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글/허성환

승강장 안전문 시에 대한 시민의 생각, 시인의 생각 _ 서울메트로 웹진



지하철을 기다리며 승강장 안전문에 적힌 시 한편을 무심코 읽다보면 잠시나마 옛 추억이 떠오른다. 추운 겨울 꽁꽁 얼어붙은 손은 좀처럼 녹지 않지만 마음만은 따뜻해진다. 짧은 글 안에 담긴 세상은 시인의 상상 속 세계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진다. 바쁜 일상 속에서 만나는 달콤한 시 한편의 유혹, 그 속으로 잠시나마 빠져보자. 


승강장 안전문에 시를 쓴 시인의 생각  

김인숙 시인 한 편의 시속을 산책하며 마음을 다스린다



"마음 밭에 꽃씨 한 알을 심을 수 있는 시 한편을 만나면, 나무와 풀과 대화 한마디 나눌 수 없던 사람들도 시 속으로 이끌립니다. 떨어진 한 알의 꽃씨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정원을 이루듯, 뜨겁고 부드럽고 환한 빛을 발산하는 한 편의 시 속을 산책하며 마음을 다스리게 되죠. 비가 내려도 젖지 않고 먹지 않아도 허기를 느끼지 않는 인내로 인생 도약의 발판을 삼아, 세상의 중심으로 나갈 의지가 길러질 것으로 믿습니다."

시인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아픔과 분노, 기쁨을 밑거름 삼아 따뜻한 위로와 소망을 담아 작품을 꽃피워낸다. 독자들이 직접 만나보지 못한 경험일지라도 그 맛과 향을 깊이 있게 담아낼 수 있다. 그만큼 승강장 안전문 시는 '도시인들의 방치된 상처에 아름다운 색깔로 덧입혀진 치료제'가 된다고 김인숙 시인은 믿고 있다. "불신과 소음에 노출된 현대인들의 외로운 자화상들이 건강한 에너지를 찾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김인숙 시인은 2012년 月刊 '現代詩學' 신인문학상 수상으로 등단하였다. 제6회 '한국현대시인협회' 작품상, 제7회 계간 '열린시학' 열린시학상 수상 경력도 있다. 시인으로서 '시'가 가진 영향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만큼 김인숙 시인은 승강장 안전문 시에 자신의 시가 게재된 것에 대해 조심스러워 한다. 시민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휴식을 줄 수 있는 산책로의 역할을 자신의 시가 과연 해 낼 수 있을 지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많은 시민들이 자신의 시를 읽고 마음의 치유를 받았으면 하는 조심스런 바람도, 시인이 생각하는 '시'의 파장력은 생각보다 클 수 있다는 믿음에 대한 방증이다.

승강장 안전문에 게시된 시는 '햇살, 그리고 3월'로 제목부터 감각적이다. '3월'이라는 계절을 형상화해서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확산적 이미지를 가진, 파장이 큰 제목의 시로서 문장이 짧고 템포가 빠르다. '아지랑이-아이들-무지개-자목련나무-햇살-참새-3월-축구공-볼우물-종주먹' 10개의 단어가 전부이며, 나머지는 문장을 만들기 위한 수식어들이다. 10개의 단어만 읽어도 햇살 따뜻한 봄날 운동장에서 뛰노는 아이들로부터 새 학기의 기쁨이 생생하게 감지된다. 3월을 물고 온 자목련 나무와 참새들이 새로운 시작의 축하객이다. 그리고 긴 질문과 여운을 던진다. '10개의 단어와 한 개의 질문' 이 시의 쿨한 매력이다.

이애정 시인 쉽고 따뜻한 시로 시민에게 다가간다



"좋은 시는 삶을 울리기도 하고 행복하게도 합니다. 시에 대해 별반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스크린도어에 게시된 시들을 보며 그런 위안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점에서 대단히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승강장 안전문 시'는 지하철을 이용하는 많은 시민들에게 열려있다. 시를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어린 학생이나 나이 든 노인도, 지하철을 기다리며 안전문 앞에 적힌 시를 읽을 수 있다. 그만큼 '승강장 안전문 시' 는 많은 사람들에게 쉽고 따뜻하게 다가갈 수 있는 시어야 한다고 이애정 시인은 말한다. "기본적으로 시가 어려워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제 시는 쉽습니다."

이애정 시인은 국제펜클럽, 한국문인협회, 여성문학인회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다른 쪽의 그대', '이 시대의 사랑법'을 펴냈다. 시인으로서 독자들에게 쉽고 따뜻하게 다가갈 수 있는 시를 쓰고 싶다는 이애정 시인. 그녀는 '잘 쓴 시'보다 '좋은 시'를 쓰기 위해 노력한다.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여운을 남기는 시가 그녀가 말하는 '좋은 시'이다. 몇 년 전 헌책방에서 자신의 시집을 발견하고 기분이 좋아졌다고. 그 만큼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시를 읽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승강장 안전문에 자신의 시가 게시되는 것 역시 헌책방에서 자신의 시집을 발견했을 때와 같은 기분 좋은 일이다.     

이번에 게시된 시 '의자는' 은 5분 만에 탄생한 시다. 지하철을 타고 가던 중 빈 의자를 보고 문득 '저 의자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을까?'라는 생각에 시인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쓴 시. 시 도입부가 원래는 '가을처럼 의자는 기다릴 줄 안다'였다. 4계절 중 유독 가을만큼은 기다림이 있어야 올 것만 같은 계절로 느껴졌고, 의자 역시 가을처럼 누군가를 기다리겠다는 시인의 생각이 묻어있는 시다. 좁은 지하철 의자를 삶에 비유하고 삶을 무대에 비유하여, 삶을 통해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상상하고 있다. 기쁜 사람 슬픈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앉았다 가는 지하철 의자는 삶이라는 무대를 통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우리네 인생을 닮았다.

조명제 시인 지구의 한 귀퉁이에 깃털 같은 온기  




"삭막한 현대 도시의 중심 교통수단인 지하철역 승강장 안전문에 풋풋하고 정겨운 시를 적어, 시민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고, 사랑과 희망을 생각하게 해주는 아름다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조명제 시인은 승강장 안전문 시를 '문화 도시 서울'을 만들어 가는 가장 좋은 사업 중 하나라고 평가하고 있다. 단순히 이동 수단으로만 여겨져 왔던 지하철 공간을 문화의 공간으로 만들어가는 일은 삭막한 도시 생활에 젖은 시민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는 것. 조명제 시인은 '고비에서 타클라만칸 사막까지', '오스트랄로 피테쿠스의 노래' 등 다수의 시집을 펴냈다. 한국문인협회, 한국시문학문인회 회원, 한국현대시인협회 부이장, 계간 '문예운동' 편집주간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런 그도 많은 시인의 시 중에 자신의 시가 승강장 안전문을 통해 시민들에게 읽히는 일이 그렇게 유쾌할 수가 없다고 한다. 지인들이 자신의 시를 보고 사진을 찍어 보내올 때는 자신의 가난한 시편이 시민들에게 읽히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 "제 시가 지구의 한 귀퉁이에 비둘기의 깃털 같은 온기를 보탠다 싶어 즐거워집니다." 하지만 시민들의 보편적 공감과 정서 등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이 전제되어야 하겠지만, 다른 시인의 우수한 작품들이 선정되지 않는 경우를 적잖이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고 한다.
   
이번에 게시된 시는 '우수(雨水) 지나고'이다. 격동의 역사와 봄의 이미지가 맞물려 묘한 느낌을 만들어 낸다는 내용의 시이다. 해마다 봄은 찾아오지만 한 번도 같은 봄은 오지 않는다. 그래도 봄은 어김없이 온다. 그러나 봄은 그냥 오는 법이 없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봄은 기적처럼 온다. 그런 의미에서 인생을 늘 새롭게 가다듬어야 할 이유가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앞서 게시되었던 시는 '언덕에는','채송화'가 있다.

  
승강장 안전문 시에 대한 시민의 생각

공석호 시는 살아있는 메시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한번 읽고 마는 일반적인 글과는 차원이 다르죠 생각에 따라 각기 다른 해석도 할 수 있고요

얼마 전 친구들과 술 한 잔 마시고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는데, 왕유 시인의 시가 눈에 들어왔다. '사람은 하루하루 부질없이 늙는 데 봄은 해마다 돌아온다. 술단지에 술이 있으니 서로 즐기면서 꽃이 진다고 섭섭해 할 것도 없다네 -왕유-' 이 시를 SNS에 올렸더니 친구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덧글이 다양하게 달렸는데, 그 중에 조조의 시를 덧글로 올린 친구도 있었다. 시를 시로 화답하는 모습이 마치 조선시대 선비들의 풍류 같았다. ‘시를 함께 읽고 공감하는 것에 이런 힘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하철을 타고 다닐 때 주로 음악을 듣지만, 지하철을 기다릴 때 승강장 안전문 시를 읽는다. 그 중에서도 마음에 드는 시가 있으면 메모해서 SNS에 올리기도 한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다. 물론 스마트폰이란 공간에도 다양한 볼거리가 있지만, 당장 내 눈앞에 펼쳐진 세상을 볼 수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고개를 15도만 들어도 많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고, 스크린 도어에 있는 시를 볼 수도 있잖아요.”

지하철이라는 공간이 승강장 안전문 시처럼 다양한 볼거리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는 문화의 공간으로 바뀌어 가면 좋겠습니다.

요즘은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나 시집을 읽는 사람은 거의 못봤다. 그만큼 세상이 각박해 지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일상에 찌들어 여유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특히나 퇴근 무렵 지하철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은 더욱 그렇다. "저 역시도 힘든 몸을 이끌고 지하철에 오를 때는 여유를 찾기 힘들어요. 그런데 승강장 안전문에 적힌 시를 읽다보면 잠시나마 여유를 찾을 수 있죠. 휴식의 느낌이랄까요."

시는 읽는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슬플 때와 기쁠 때, 같은 시를 봐도 느낌이 전혀 다르다. 그만큼 시는 짧은 구절 안에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지하철 안전문에 적힌 시는 잠시나마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소재라고 생각한다. 이택윤 씨는 지하철도 하나의 좋은 문화공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미국 지하철처럼 지저분하고 음산한 공간이 아닌, 쾌적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는 만큼 수준 높은 문화를 통해 대중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황용씨는 서울 근교나 한강 공원 등 주말 나들이를 즐기기 위해 지하철을 이용한다. "주말에 잠시나마 휴식을 취하기 위해 지하철을 이용하는데,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스크린 도어에 적혀 있는 시를 읽곤 합니다. 좋은 시는 사진을 찍어 저장해 두기도 하구요. 가벼운 마음으로 좋은 시 한 편을 읽고 나면 기분까지 좋아지잖아요."

평소에도 책은 읽지만 시를 읽는 일은 많지 않다. 그만큼 일상에서 접하기 힘든 것이 시이다. 시를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따뜻해지는 걸 경험하지만,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더구나 시집에 담긴 많은 시 중에 한 두 편을 제외하고는 이해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승강장 안전문에 적힌 시는 대체로 마음에 와 닿는 것들이다. 일반 시민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시들로 구성해 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평소 접하기 힘든 시, 그 중에서도 마음에 와 닿는 시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점이 승강장 안전문 시의 가장 큰 장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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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기고가 허성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