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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글/김은성

좋은 브랜드가 성공할 때, 세계는 한뼘 더 좋아진다 _ 아우디 매거진

좋은 브랜드가 성공할 때, 세계는 한뼘 더 좋아진다



그는 아이디어의 힘을 믿는다. 그리고 그 힘을 좋은 브랜드가 성공하도록 하는 일에 쓰기를 원한다. ‘광고주가 아니라 세상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을 바꾸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업에 지치는 법이 없다.


글 김은성 사진 황종현


 

KS: THE IDEA COMPANY는 웰콤의 전성기를 이끌며 천재 기획인이라 불렸던 이근상 대표가 이끄는 회사다. 아우디 코리아를 비롯 CJ해찬들, 뉴욕라이프, 해태음료, 진에어 등의 광고 캠페인을 만들며 제품개발, 네이밍, 브랜드컨설팅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고 있다. 이 독립광고회사 사람들은 아무도 개척하지 않은 길을 만났을 때 가장 흥을 내어 일한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을 우리가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아우디 TV 광고는 우리나라의 뛰어난 건축 디자인과 아우디의 첨단기술을 근사하게 조우하게 만들었다. 탤런트 김혜수가 ?요리하는 여자야라며 고추장으로 파스타를 만드는 해찬들의 광고는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었다.


사무실을 찾아 가장 먼저 만난 것은 아기 진돗개 산이였다. 낯선 이의 품에 꼬리를 흔들며 파고드는 모습에 직원들 사랑 듬뿍 받는 태가 난다. 10년간 머무른 강남의 사무실을 떠나 풍경 좋은 남산 자락에 사무실을 얻었고, 이후 개를 길러야겠다 생각이 들자 바로 진도에서 산이를 데려왔다. “떠오른 생각은 실천해야 직성이 풀리지요. 뭘 해야겠다 싶으면 끝을 봐야 해요.”

요즘은 산이와 남산에서 산책하는 즐거움에 빠졌지만 할리데이비슨과 아이스하키도 그의 오랜 취미다. 8년 동안 탄 할리 데이비슨을 커다란 말을 집안에만 가두어 둔 듯한 미안함에 분주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종종 몰고 나간다. 주말이면 아이스 링크 위에서 보디체크를 즐긴다. 고강도 스트레스 업종이라고 알려진 광고업계에서 스무 해가 넘도록 지내고 있는 이 대표다. 그럼에도 일상의 평온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취미에 몰입해 무념무상의 상태가 되는 것. “머리란 게 비우자고 맘 먹는다고 비워지는 게 아니잖아요? 집중할 수 있는 일로 머리를 채워야 잡념이 빠져 나가죠 그의 표현에 의하면 새 세입자가 들어와야 이전 세입자가 나간다’. 바이크나 아이스하키처럼 1초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이 위험해서 더 효과적이다.


아이디어란 참 무정해서, 열 시간을 꼬박 앉아 고민해도 단 하나의 명쾌한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아니, 그럴 때가 더 많다. 이 대표는 그럴 때 가장 위험한 발상은 “10시간 해서 안 돼? 그럼 20시간 붙잡고 있어야지!”라고 말한다. 아이디어를 개발해야 하는 모든 직업인에게는 리부팅의 힘이 중요하다. 고민에 고민을 계속하다 문득 다른 것에 집중했을 때, 속을 다 털어버렸을 때 번뜩! 좋은 생각이 나온다는 것. 기필코 찾고야 말겠다는 집중력과 옳은 방향만 가지고 있다면, 열심히 딴짓을 하는 것도 괜찮다. 그런다고 그동안 입력한 데이터들이 설마 날아가기야 할까. “최고의 아이디어는 처음의 발상으로 되돌아갔을 때 나와요. 내내 고민하던 아이템들이 새로 정리되고 엄청난 논리로 재포장되는 거죠.”

나이가 들며 크고 작은 변화가 생겼다. 재능의 힘을 믿던 예전에 비해 지금은 연륜과 인풋의 힘을 더 믿게 됐다. 시행착오의 경험, 시간의 힘을 무시하지 못한다는 생각이다. 최근 십년 새에는 받아들임에서도 더 겸허해졌다.

대개 젊을 때 많이 읽고 보고 듣고, 나이가 들어 그 지식을 일로 전환한다고 하지요? 제 경우는 반대예요. 나이가 들어 눈이 뜨이면서 지식을 수용하는 폭과 깊이가 달라졌어요. 열기가 좀 줄은 대신, 울림통의 크기를 키웠달까요.”

요즘에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며 역사 책을 즐겨 읽는다. 그에게 책은 아이디어를 위한 게 아니라, 삶 전체를 위한 것이다.

아이디어는 타율에 의해 산출되는 게 아니다. 때문에 KS: THE IDEA에서는 각자 스케줄 관리에 철저하되, 되도록 늦게까지 근무하지 않도록 한다. 한달에 한번, 셋째주 금요일에는 역사, 사회, 문화 등 업무와 관계되지 않은 강의를 듣고 12시에 퇴근한다. “평일 낮에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 공식적으로 놀아보라는 거죠.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보이거든요.”

이근상 대표는 직원들에게 업의 본질에 대해 강조한다. “우리의 업은 광고주를 위한 게 아니다. 우리는 좋은 브랜드가 세상에 더 잘 알려지도록 돕는다.” 라는 것. 그래서 이 회사는 클라이언트의 요청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대신, 해당 브랜드의 근본을 샅샅이 탐구해 새롭고 벼려진 아이디어를 내놓고자 한다.

환자가 말하는 10가지 증상에 10가지 약을 주는 게 가장 나쁜 방법이에요. 예컨대 피부가 뭐가 나는 게 순환기나 소화기의 문제일 수 있는데, 이 경우 피부과 약을 바르는 게 아니라 내장을 치료해야죠. 의사에게는 진짜 문제를 분석할 의무가 있어요.”

때로는 클라이언트가 준 브리프와 전혀 다른 방향의 답을 가져간다. 그의 말에 따르면 성공 확률은 고작 3분의 1’. 하지만 그 진단이 정곡을 찔렀을 때, 클라이언트와 KS: THE IDEA는 뗄 수 없는 관계가 된다. “종종 상대가 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여러 번 다시 해오랄 때가 있죠. 그럴 땐 거절해요. 직원들의 사기와 자존심을 위해서예요. 나는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 회사에 대한 믿음이 돈보다 훨씬 귀중해요.”


아우디 매거진

글 김은성

사진 황종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