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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글/김은성

셀피의 기술 _ 삼성카드 매거진S

미남미녀가 아니어도 괜찮은

셀피의 기술



두꺼운 뿔테 안경으로 얼버무리거나 고개를 숙여 머리칼로 뺨을 가린 회피형 셀피는 그만. 잘 벼린 셀피 기술은 현재의 나를 더 사랑하게 만든다.  15초면 된다. 최고의 셀피를 찍고, 그 모습으로 지금 이 시절을 기억하자. 미남 미녀가 아니라도 괜찮은,호감형 셀피 기술 몇 가지를 소개한다.


빛은 중요하고 중요하고 중요하다. 피붓결은 고르고 이목구비는 또렷하게 만들어주는 조명이 완비된 곳으로 가자. ‘소개팅하기 좋은 카페로 검색되는 곳이라면 적당. 허나 시선이 부담스러운 셀피초보라면 집이 최적지다. 음식 사진 촬영시 흰 우드락으로 반사판을 만들어 찍듯, 흰 벽에 등을 대고 찰칵! 컴퓨터 화면 앞도 괜찮다.

사실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곳은 역시 욕실이다. 하지만, 참아라. 희뿌연 조명 아래 거울을 향해 미소를 지어봐야 역시 뒤편의 변기가 걸린다. 인공광에 익숙해졌다면 자연광도 맘껏 활용해 보자. 인스타그램 셀러브리티처럼 역광셀피, 노을셀피, 몽환셀피(가장 밝은 곳을 향해 스마트폰을 뻗으면 된다)등 다채로운 빛의 조화를 즐기자. 지겨운 내 얼굴이 빛에 따라 얼마나 달라 보이는지 알면 금세 셀피중독자가 될 것이다.


각도는 2가지다. 팔의 각도가 첫째, 얼굴 각도가 둘째. 팔은 쉽다. 고수들은 의도하는 분위기에 따라 팔의 각도를 선택한다. 지드래곤을 필두로 남성 아이돌들은 로우앵글+클로즈업+무표정+역광 셀피를 올린다. 하지만 흑인 힙합 부자의 거만한 이미지를 원하는 게 아니라면, 지양하자. 초보에게는 ‘45가 최선. 얼굴의 각도를 찾는 건 시간이 좀 걸린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고, 최소 자기 나이 정도는 찍어봐야 베스트 각도를 알 수 있다.(35살이면 35! 어릴수록 아무렇게나 찍어도 잘 나오니까..,) 목과 팔이 뻣뻣해질 즈음이면, 소녀시대 제시카의 왼쪽 얼굴 사랑을 떠올리며 기운 내자. 드라마에서조차 왼쪽 얼굴을 고집하는 그녀도 있는데, 싶어 힘을 내게 된다.

만약 아무리 찾아도 근사한 각도가 없다면? 얼굴 중 가장 괜찮은 부분만 강조하자. 눈썹이 짙고 이마가 반듯하면 위에서, 오른쪽 쌍커풀이 자연스럽다면 오른쪽에서 찍는 식이다. 외모에 관해 단 한번도 칭찬받은 적이 없다면? 현재 당신을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이에게 물어라. “나는 어디가 가장 예쁘니(멋지니)? 사랑한다면 한 부분 정도는 말해주겠지. 얼굴보다는 몸이 나은 경우라면, 카메라를 아래로 내리는 것도 방법이다. 여성이라면 가녀린 쇄골이나 반듯한 어깨선, 팔 라인, 클리비지 등을 살짝 보여주는 것도 괜찮다. , 거울에 비친 힙 라인은 한번 더 고민해 보고 올려라. 남성이라면 강조보다는 절제를 떠올리자. 피트니스 클럽에서, 상의를 입지 않은 채, 아령을 든 포즈만은 제발 자제할 것! 차라리 핏 좋은 셔츠를 입고 팔근육을 은근히 드러내라. 셀피 월드에서 과함은 무리수요 절제는 미덕이니라.

각종 셀피 도구와 셀피 어플을 활용하는 것도 셀피족의 여흥이다. 셀카봉은 만원 안쪽이면 산다. 포인트는 미처 준비하지 못한 채 촬영당한 것 같은 아련함! 연인의 부름에 대답하듯 으응?’ 소리를 내며 돌아보라. 타이머를 맞추고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리면 살짝 흐트러진 머리카락도 함께 연출된다. 블루투스 셀카 리모콘과 셀카 드론 등 최첨단 기술에도 눈 돌려보자. 셀피 어플은 필터와 편집툴은 물론 무음기능도 있어 셀피 기술을 단숨에 업그레이드한다. 몸매 보정앱은 한번 손대는 순간 빠져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이지만, 자아의 충족에 이만한 게 또 없다.


얼굴 셀피가 왠만해졌다면 이제는 비전형적 셀피에 도전할 차례다. 수도꼭지, 비온 뒤 고인 물, 노트북 모니터, 공사장 가림판,자동차 미러 등에 비친 나를 찍다 보면 당신도 셀피 아트를 하고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SNS에 바로 올려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거다. 무플이면 내리고(진짜 별로라는 뜻), 당신의 반려동물이나 음식에 관련한 답글만 달리면 그럭저럭, “이거 너 맞아?”면 성공적이다. 성공 단계에 다다르면 꼴불견 셀피만 조심하면 된다. 눈물을 또르르 흘리는 나, 너무 피곤해 고이 잠든 나,외제차 키나 고가의 지갑 등을 든 나 등이다.

마지막으로 셀피 기술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마인드다. 유쾌하고 당당한 마음일 때 최적의 표정과 포즈가 나온다. 무뚝뚝한 당신이라면 가장 흥겨워지는 음악을 틀어도 좋겠다. 더 좋은 건, 가장 사랑하는 것을(: 치맥, 하이킹, 연인의 이름 등) 10번 외치고 바로 찍어라. 기막힌 셀피가 탄생할 거다.

 

*셀피: 한국식 영어로는 셀프 카메라. 줄여서 셀카.

2013년 옥스포드 대학 출판사가 올해의 단어로 선정할 정도로 일반화된 단어다.


삼성카드 매거진S

자유기고가 김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