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전위 김구림

본능적 엇박으로 춤춘다


  

철 들자 망령이라는 말이 있다. 예술은? 철 들면 종말이다. 만만한 걸 반복하고 싶어질 때그 예술가는 시들기 시작한다. 여기 제도권 바깥에서 생을 바쳐 모든 틀을 깨부수어 온 해체주의자가 있다. 1936년생 청년 작가는, 이제 시작이다.

KTX매거진/ 글 김은성 사진 이규열


    

‘A는 질문하고 B는 답변한다는 인터뷰의 포맷에 김구림은 도무지 흥미가 없었다. 소파에 앉자마자 평생을 몰두해 온 주제에 관하여 헤쳐 놓기 시작했다. 쿵짝쿵짝 끝없이 이어지는 내리 한판. 마침내 그가 마른침을 꿀꺽 삼키는 찰나. 고작 질문 한 가지를 던졌고 아니나 다를까, 이내 사근하게 타일러졌다.

그것은 이따 나옵니다. 잠시 기다리시오.”

망했군. 오십 개가 넘는 질문을 적은 종이를 호주머니 속에서 구기며 귀를 기울였다.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비전포럼에서 퍼포먼스 ‘1981 5 27-손톱과 시를 재연하기 위해 방문한 그를 만났다. 한국 실험미술을 개척한 그가 본격적으로 작품을 시작한 시기는 1969. 상실의 시대, 몰인정한 사회에서 김구림의 활동은 가히 갸륵할 정도였다. 그 에너지의 근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갸우뚱한다.

호기심을 못 참아요. 궁금한 걸 그저 풀어내다 보니.”


하나의 신체에 예술가 열의 영()이 깃든 것일까. ‘누가시켜서도 아니고, 누구에게 배워서도 아닌 타고난 자연스러움으로 그는 작품을 뽑아내었다. 페인팅, 판화, 조각, 설치, 오브제, 무대 미술, 연극 의상 디자인 그리고 퍼포먼스 한 점 한 점이 불가해의 예술이다. 작품의 종과 양, 에너지 모든 면에서 김구림은 (세간의 못된 지칭처럼) ‘미친놈이었다.

눈앞의 장면이 흑백에서 총천연색으로 바뀌었고 이야기는 나는 안 팔리는 작가예요로 끝이 났다. 예술의 안팎을 무람없이 오갔을 뿐인데, 소년이 청년이 되고 어느새 머리 하얀 노인이 되었으니 어쩐지 서러운 마음이 들려는데, 그가 웃는다. “예술은, 다만 즐거운 일 아닌가요?”

자신이 누구인지 낯설게 만들어 이 휑하고 빤한 인생을 의심케 하는 게 예술의 본령이라면 그는 이번에도 완벽하게 성공했다. (나는 녹취록을 몇 번이나 던지며 글쓰기란 무엇인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긴, 일생 동안 그는 질문에 답해 본 일이 없다. 지루한 세상을 향해 활활 불타는 구두를 던지듯 질문을 보냈고, 수신 확인이 되지 않아도 보내고 또 보냈으므로. 우리에게 조금 일찍 도착한 이 이상하고 아름다운 예술가를 몇 개의 조각으로 전해 보려 한다. 퍼즐의 윤곽은 그의 작품을 직접 찾아보며 맞추어 나가기를.

 

쓰레기통 뒤적여 건진 예술

미술대학이라고 들어갔는데, 이거 뭐 빵떡모자 쓰고 야외 나가 풍경이나 그리는 수준이었어요.” 어렴풋이나마 세계 미술의 변화를 감지하고 있던 것일까. 청년 김구림은 학생의 질문조차 수용하지 못하는 미대를 두 학기 만에 관둔다. 유명짜한 현대 미술가를 찾아 조언을 구해도 보지만, 그의 집 문턱도 넘지 못하고 이런 소리를 듣는다. “장사나 하시오.”

하지만 스스로 소회하듯 밟힌 만큼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는 성격은 예술에 대한 열망을 더욱 달굴 뿐이었다. 자퇴 후 헌책방을 순례하던 어느 오후, 그는 누군가 보고 버린 잡지 <타임> <라이프>를 보고 개안한다. 개념을 언어화할 수는 없었지만 그토록 찾아 헤매 온 예술이 쓰레기 더미에 있었다. ‘미제 잡지의 미술은 형식이 아니라 예술에 대한 새로운 애티튜드였다.

바닥에 흩뿌린 물감, 벽에 기대어 선 빗자루도 예술이라는 거예요. 예술을 이루는 요체는 기술이 아니라 사상과 철학이란 걸 깨달았지요.”

당대 예술가들은 언어와 사진, 수치와 사물 등 각각의 기호들을 부정하고 통합하는 실험을 하고 있었다. 영자 텍스트를 온전히 해석하지는 못했지만, 그 따위 무슨 문제였을까. 김구림은 서구 예술 작품을 자신의 사고와 감각으로 던지고 굴리고 부수었다.그런 다음 제멋대로 재조립하기 시작했다.

 

시대는 제4집단을 무뢰배라 불렀다

1969년 을지로 소림다방. 새소리와 바람 소리, 소울과 사이키 속에 박수 소리가 일렁일렁 리듬을 탄다.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를 넘은 4부 문화부단체를 만듭시다!”


13명의 예술가가 무체사상이라는 미학 개념 아래 모였다. 김구림을 통령으로 마임니스트, 화가, 의상 디자이너, 기자, 시나리오 작가, 음악가 등이 기성 문화로부터 해방을 선언한 것이다. 명동 거리에 넝마를 깔고 예술과 연극!’이라 외쳤다. 길에 나서서 사람들에게 흰 봉투를 나누어 주었다. 봉투 안에는 찢어진 콘돔과 쥐약처럼 보이는 가루(실제로는 인체에 무해한 카바마인)를 넣었다. 전태일의 분신, 김민기의 아침이슬’, 김지하의 필화 사건이 일어난 1970년대의 일이다. 기성 언론의 경악과 한탄은 당연했다.

“10대 불량배의 난동보다 도가 지나치다. 젊은이들조차 이문제아들에게 깊은 우려를 표한다. 이들의 해괴망측한 행동은 언론의 관심을 누리기 위한 것일 뿐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제4집단은 차츰 전국 면 단위까지 퍼져 나갔다. 이윽고 1970년 광복절. 백기를 들고 관을 둘러멘 제4집단 멤버들은 한강에서 기성 문화를 장사 지내기 위해 행진한다. 시청 앞에서 미리 대기하던 경찰에 의해 포위된 멤버들은 당황한다. 교통방해죄로 체포된 김구림은 그날부터 괴로움을 좀 겪었다.

이북에서 자금을 받았지? 집단이라는 게 대체 정체가 뭐야?”

며칠인지 모르게 비몽사몽하는 와중 눈앞에 청요리 한상이 차려진다. “배가 부르니 정신이 듭디다. 죄수도 죽이기 전엔 배불리 먹인다던데 오늘이 내 사형일이구나 싶었지요.” 눈이 가려지고 어딘가로 차가 이동했다. 안대가 벗겨지자 눈이 부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소리가 들린다. ‘땅땅땅, 무죄!’

알아보니 실상은 이러했다. 4집단이 와해된 동안 주간지 데스크들의 한숨이 깊었던 것. 1면을 차지하던 이슈 메이커가 사라지니 판매 부수가 급감했고, 이윽고 국장들은 남대문경찰서장에게 김구림을 내놓으라고 전화를 걸었다. 당시 남대문경찰서장은이거 자칫하면 나도 곤란해지겠구나.” 싶어 재판정으로 짐을 넘겼고, 재판정도 속결로 처리해 버렸다. 하지만 그리 간단치는 않았다. 이후 반년간 전국 어디를 가든 미행자가 집요하게 따라붙었고, 고향의 부친도 경찰서에 끌려가기에 이른다. 마침내 그는 제4집단의 해체를 선언한다. 이 기기묘묘한 집단은 단 1년 활동했을 뿐이다. 하지만 김구림은 그 시간을 통해 평생 지속해 나갈 작업의 바탕을 다질 수 있었다.

 

내 이름은 구림, 언덕  수풀 

원래 본명을 사용할 계획이었으나 아뿔싸, 공교롭게도 열 살 위 선배와 이름이 같았다. 새 이름은 은사인 백낙종 선생이 준 것이다. 언덕에 돋아난 풀. 그 이름에서 현상에서 흔적으로-김구림의 불과 잔디에 의한 이벤트를 기억하는 것은 꽤나 자연스러운 작용이다. 1970 4 11일로 돌아가 볼까. 여기는 한양대학에서 뚝섬으로 이어지는 살곶이다리다. 근처에서 한동안을 불한당처럼 서성이던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 , ,  시계 괘종이 꼭 열한 차례 울리자 강변 위에 우뚝 선다. 사내는 도둑처럼 재빠르게 경사진 둑에 빗금을 긋기 시작한다. , ,  사선은 빗살무늬 토기의 무늬와 닮았다.

 

돌연 불을 지르기 시작하는 사내. 선으로 가두어진 면들을 겅중겅중 건너서 달리며 방화하는 그에게 구경꾼의 시선이 꽂힌다.둑은 이내 쥐불놀이처럼 검붉게 타오른다. 탄 곳과 안 탄 곳이 삼각뿔을 이루며 거대한 무늬가 되었다. 폭은 22미터 총길이는100미터. 한 달 후 탄 곳과 안 탄 곳의 구별 없이 대지는 새싹을 틔웠고 방화의 흔적은 전부 사라졌다. 대지는 어떻게 미술이 되는가. 사람들은 그것을 구경했다. 당시 회화의 주재료였던 캔버스도 조각의 주재료였던 청동도 쓰지 않고 그는 예술을 했다. 그날 사내가 든 불씨에 의해 예술은 비물질화되었고 대지미술이 태어났다. 영국의 대지미술가 리처드 롱도 인도에서 불태우기 작업을 한 바 있지만, 김구림보다 훨씬 늦은 최근의 일이다.

 

다시 태어난다면 외과의사

초등학교 때부터 외과의를 꿈꾸었고, 미국에서는 외과의인 지인에게 졸라 수술실에 조수로 들어가는 기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요소들이 해체되고 통합되는 일에 집중해 온 그에게 메스와 바늘은 그리 낯설지 않으리라. 2000년 미국에서 돌아와 마주한 한국은 피를 흘리고 잔뜩 붓고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은 환자의 이미지였다.

텔레비전에 나온 옛 가수는 하도 성형을 해서 괴물처럼 보였어요. 거리의 사람들은 공장에서 갓 뽑은 마네킹 같았고요.”

연남동 대안공간 플레이스막에서

열린 음양 시리즈는 성형천국을 풍자하는 작품으로 구성했다. 주제는 사라진 아름다움’. 전시 공간은 어둑한 성형외과가 됐고, 그 안은 미간에 쇠가 박힌 얼굴 부조, 물 안의 뱀, 조각난 마네킹 팔과 머리, 가짜 사과로 가득 찼다. 이 실험적인 전시는 특히 청년들에게 화제가 됐는데, 한번은 미술관 관계자가 이 김구림이 김구림 화백인가, 동명의 청년 작가 김구림인가?” 물어오기도 했다.

 

학연과 인맥의 잣대 위에서 뛰노는 광대

하나는 촌놈이 보통이 아니구먼.” 다른 하나는 건방지게 촌놈이 꺼떡거리고 말이야.” 김구림에게 따라붙은 말이다. 경북에서 갓 올라온 청년이 소위 엘리트들 사이에 침범해 말을 걸기 시작했다. “잘나고 못나고는 토론으로 가려 봅시다. 언제고 결판이 날 때까지.”

못 하겠다면 우스워질 게 뻔했으므로 누구도 피하지 못했다. 양측에 증인을 둘씩 세우고 예술이 무엇인가를 논하며 밤을 지새우는 젊은이들. 어떤 학자도 하지 않는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어 백전백승을 거두는 이 예술가에게 사람들은 매혹되었고, 그는 당대의 가장 놀라운 소문이 되었다.


그러나 새로움과 다름이 당대에 받는 취급이란 흔히 구박과 배척일 따름이다. 대학을 자퇴한 시골 출신, 게다가 국민학교조차 졸업하지 못했어도 예술가가 될 수 있다며 인맥과 학연을가뿐히 무시하는 예술가는 위험분자였으리라. 이후 걸레와 빗자루,이불과 삽 등 일상의 물건을 활용한 설치미술로 단숨에 1970년대 일본 화랑들의 슈퍼스타가 된 김구림을 한국 비평가들은 아주 잠깐 받아들였을 뿐이다. “한국은 이상하게 남이 먼저 알아 줘야 다시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환호도 잠시, 미술계는 김구림의 전위성을 이단 취급했고 그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2012년 미국 테이트모던갤러리에는 잭슨 폴록, 데이비드 호크니, 신디 셔먼 등 20세기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들과 함께 김구림 세 글자가 나란히 걸렸다. 한국인으로서는 백남준 이후 두번째였다. 1969년 당시 서울에서 여자 모델의 몸에 그림을 그린 보디 페인팅 퍼포먼스 사진이 전시됐다.미국에서 활동하는 15년 동안 한번도 주목하지 않았던 한국 미술계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국내 미단의 폐쇄성은 더 심해져 있었다. 국내 미술관이 작품을 구입하기로 했다가 하루 만에 취소한 일도 있었다. 가격을 후려치는 관행에 질려 그는 앞으로 작품을 안 팔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김구림은 정체성이 무어냐, 일관성이란 게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내 작품이 잘 안 팔리지요. 꽃이면 꽃,물방울이면 물방울 평생 하나만 그리면 잘 팔리니까요. 하지만 예술가라면 마땅히 시대에 뛰어들고, 그 파도 속에서 허우적거려야 한다고 봐요. 시대가 변하면 사고가 바뀌고 작품도 변합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내가 비정상입니까? 나는 과거를 우려먹고 싶지 않습니다. 뒷걸음치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나는 죽기 전까지 계속 실험을 할 생각입니다.”



KTX매거진

글 김은성

 사진 이규열





Posted by ant-man 담벼락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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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브랜드가 성공할 때, 세계는 한뼘 더 좋아진다



그는 아이디어의 힘을 믿는다. 그리고 그 힘을 좋은 브랜드가 성공하도록 하는 일에 쓰기를 원한다. ‘광고주가 아니라 세상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을 바꾸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업에 지치는 법이 없다.


글 김은성 사진 황종현


 

KS: THE IDEA COMPANY는 웰콤의 전성기를 이끌며 천재 기획인이라 불렸던 이근상 대표가 이끄는 회사다. 아우디 코리아를 비롯 CJ해찬들, 뉴욕라이프, 해태음료, 진에어 등의 광고 캠페인을 만들며 제품개발, 네이밍, 브랜드컨설팅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하고 있다. 이 독립광고회사 사람들은 아무도 개척하지 않은 길을 만났을 때 가장 흥을 내어 일한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을 우리가 굳이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아우디 TV 광고는 우리나라의 뛰어난 건축 디자인과 아우디의 첨단기술을 근사하게 조우하게 만들었다. 탤런트 김혜수가 ?요리하는 여자야라며 고추장으로 파스타를 만드는 해찬들의 광고는 새로운 트렌드를 이끌었다.


사무실을 찾아 가장 먼저 만난 것은 아기 진돗개 산이였다. 낯선 이의 품에 꼬리를 흔들며 파고드는 모습에 직원들 사랑 듬뿍 받는 태가 난다. 10년간 머무른 강남의 사무실을 떠나 풍경 좋은 남산 자락에 사무실을 얻었고, 이후 개를 길러야겠다 생각이 들자 바로 진도에서 산이를 데려왔다. “떠오른 생각은 실천해야 직성이 풀리지요. 뭘 해야겠다 싶으면 끝을 봐야 해요.”

요즘은 산이와 남산에서 산책하는 즐거움에 빠졌지만 할리데이비슨과 아이스하키도 그의 오랜 취미다. 8년 동안 탄 할리 데이비슨을 커다란 말을 집안에만 가두어 둔 듯한 미안함에 분주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종종 몰고 나간다. 주말이면 아이스 링크 위에서 보디체크를 즐긴다. 고강도 스트레스 업종이라고 알려진 광고업계에서 스무 해가 넘도록 지내고 있는 이 대표다. 그럼에도 일상의 평온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취미에 몰입해 무념무상의 상태가 되는 것. “머리란 게 비우자고 맘 먹는다고 비워지는 게 아니잖아요? 집중할 수 있는 일로 머리를 채워야 잡념이 빠져 나가죠 그의 표현에 의하면 새 세입자가 들어와야 이전 세입자가 나간다’. 바이크나 아이스하키처럼 1초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이 위험해서 더 효과적이다.


아이디어란 참 무정해서, 열 시간을 꼬박 앉아 고민해도 단 하나의 명쾌한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아니, 그럴 때가 더 많다. 이 대표는 그럴 때 가장 위험한 발상은 “10시간 해서 안 돼? 그럼 20시간 붙잡고 있어야지!”라고 말한다. 아이디어를 개발해야 하는 모든 직업인에게는 리부팅의 힘이 중요하다. 고민에 고민을 계속하다 문득 다른 것에 집중했을 때, 속을 다 털어버렸을 때 번뜩! 좋은 생각이 나온다는 것. 기필코 찾고야 말겠다는 집중력과 옳은 방향만 가지고 있다면, 열심히 딴짓을 하는 것도 괜찮다. 그런다고 그동안 입력한 데이터들이 설마 날아가기야 할까. “최고의 아이디어는 처음의 발상으로 되돌아갔을 때 나와요. 내내 고민하던 아이템들이 새로 정리되고 엄청난 논리로 재포장되는 거죠.”

나이가 들며 크고 작은 변화가 생겼다. 재능의 힘을 믿던 예전에 비해 지금은 연륜과 인풋의 힘을 더 믿게 됐다. 시행착오의 경험, 시간의 힘을 무시하지 못한다는 생각이다. 최근 십년 새에는 받아들임에서도 더 겸허해졌다.

대개 젊을 때 많이 읽고 보고 듣고, 나이가 들어 그 지식을 일로 전환한다고 하지요? 제 경우는 반대예요. 나이가 들어 눈이 뜨이면서 지식을 수용하는 폭과 깊이가 달라졌어요. 열기가 좀 줄은 대신, 울림통의 크기를 키웠달까요.”

요즘에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며 역사 책을 즐겨 읽는다. 그에게 책은 아이디어를 위한 게 아니라, 삶 전체를 위한 것이다.

아이디어는 타율에 의해 산출되는 게 아니다. 때문에 KS: THE IDEA에서는 각자 스케줄 관리에 철저하되, 되도록 늦게까지 근무하지 않도록 한다. 한달에 한번, 셋째주 금요일에는 역사, 사회, 문화 등 업무와 관계되지 않은 강의를 듣고 12시에 퇴근한다. “평일 낮에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 공식적으로 놀아보라는 거죠.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이 보이거든요.”

이근상 대표는 직원들에게 업의 본질에 대해 강조한다. “우리의 업은 광고주를 위한 게 아니다. 우리는 좋은 브랜드가 세상에 더 잘 알려지도록 돕는다.” 라는 것. 그래서 이 회사는 클라이언트의 요청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대신, 해당 브랜드의 근본을 샅샅이 탐구해 새롭고 벼려진 아이디어를 내놓고자 한다.

환자가 말하는 10가지 증상에 10가지 약을 주는 게 가장 나쁜 방법이에요. 예컨대 피부가 뭐가 나는 게 순환기나 소화기의 문제일 수 있는데, 이 경우 피부과 약을 바르는 게 아니라 내장을 치료해야죠. 의사에게는 진짜 문제를 분석할 의무가 있어요.”

때로는 클라이언트가 준 브리프와 전혀 다른 방향의 답을 가져간다. 그의 말에 따르면 성공 확률은 고작 3분의 1’. 하지만 그 진단이 정곡을 찔렀을 때, 클라이언트와 KS: THE IDEA는 뗄 수 없는 관계가 된다. “종종 상대가 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여러 번 다시 해오랄 때가 있죠. 그럴 땐 거절해요. 직원들의 사기와 자존심을 위해서예요. 나는 제대로 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 회사에 대한 믿음이 돈보다 훨씬 귀중해요.”


아우디 매거진

글 김은성

사진 황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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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마음이 이루어낸 맑고 푸른 빛

조각가 이영학의 이끼 정원



이영학의 오래된 정원은 그의 작품이 품은 담박함과 간결함을 닮았다. 옛 돌을 쪼아 낸 야트막한 홈에 맑은 물이 찰랑거린다. 물 위로 드리운 나무 그림자가 온화한 햇볕과 어울려 보기 좋다. 돌과 물과 풀의 꾸밈없는 어울림. 선생은 그것이 삶이라 말한다. “예술가의 생활이란 한 인간이 성숙하는 길과 다르지 않아요. 그침 없이 단련해 맑은 물이 되어 가는 거지요. 금이 아니어도 좋아요. 덜 완성됐어도 그 과정이 아름다우면 된 거예요. 예술은 덤덤한 노력 그 자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요.”

KB프리미엄 맴버십 매거진 <골드앤와이즈>/글 김은성 사진 김재이

 

 

“저걸 하나 훔쳐갈까.” 오랜 벗의 전시에 붙여 소설가 박완서가 건넨 글에서 가장 도드라졌던 글줄이다. 아무렇지 않게 놓인, 그래서 슬쩍 하나쯤 들고 가도 자리도 안 나게 생긴 돌확을 보다가 생겨난 삿된 마음을 고백한 말이다. 이영학이 물을 담아 풀을 기르기 전의 돌확은 그저 묵직한 바위일 뿐이었다.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이 “이 돌도 전시냐”고 물었을 정도다. 예술가의 작업에 별다른 더함과 뺌이 없다니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오랜 세월 이맛살을 찌푸리며 유일한 단어와 문장을 고르기 위해 애써 온 문장가는 생각한다. 꾸밈과 애씀이 없어 보기에 이리도 마음이 편안한 것일까. 벗의 작품은 시간에 닳아 더없이 자연스러워진 정자의 댓돌 같았다. 대갓집의 주춧돌처럼 듬직했다. 정을 들고 돌과 맞서는 대신 오래 바라보고 어루만진 덕이다.

그리하여 소설가는 벗의 속내를 곰곰 짚어본다. “이영학이 돌에게서 찾고 싶어 한 것은 숨어 있는 형태가 아니라 더 깊이 숨긴 돌의 꿈이 아니었을까?” 예술가의 솟아오르는 에너지가 아니라 다감한 기다림이 모든 작품에 닿아있다. 조금 수줍고 그만큼 잔정 많은 그의 성정은 돌과 이끼, 풀과 나무, 너른 흙에 거름처럼 고루 배어들었다. 정원과 작품 사이에 경계가 전혀 없다. 생활과 창작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지 않다.

 

연하고 수줍고 원초적인 초록의 향연

앞서의 글을 떠올리며 언덕을 오르다가 ‘이곳이구나’ 감이 왔다. 북한산 자락이 이어지는 수유동에 자리한 이영학의 집. 돌이 켜켜이 쌓여 있어 멀리서도 단단한 기운이 감지된다. 문을 열고 들어서노라니 어쩐지 아득해진다. 좁다란 길 양편에 책이나 LP처럼 쌓여있는 작고 큰 돌덩이들. 작품이라기엔 무던하고 자연이라기엔 하나 하나 남다른 오묘한 경지. 이끼와 풀과 나무가 품은 초록의 결이 무척 다채롭다. 연한 푸름 짙은 푸름 어둑한 푸름이 오롯한 개성을 품고서 하나의 커다란 푸름이 되어 있달까.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여름 고의 적삼을 걸친 선생이 현관에 서 반기고 서 있다. “무릉도원 같네요.” 얼이 빠져 제대로 된 어휘를 고르지 못하고 뻔한 말을 내뱉으니 선생이 웃는다. “사철 좋지만 초여름의 정원은 그만이지요. 창밖으로 바라보면 아, 좋다! 좋아! 소리가 절로 나와요.” 그러고 보니, 계절을 맞아 점점 깊어지는 햇볕이 이 무대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듯 하다. 주단 같은 이끼와 열심히 솟아오르는 대나무, 맑은 물 고인 돌덩이가 보드라운 햇살과 바람 안에 또 다른 세계가 되어 있다. 순하고 고요하되 밖을 향해 결계를 친 듯 고립적이다.

“늘상 쇠를 깡깡 치고 돌을 다듬는데 도심의 개미집 같은 아파트에서 살 수가 있나요. 너른 마당이 있는 집이어야만 했어요.” 바스락 바스락 타오르는 벽난로 소리를 들으며 선생의 말을 듣는다. 손수 기름을 먹인 베니어 합판의 것인지 응접실 가득 놓인 고목의 것인지 은은한 향내가 이야기의 정취를 더한다. 선생의 부모님은 북에서 피난 해 와 부산에 터를 잡고 살았다. 오르면 산이고 나가면 바다인 곳에서 어린 시절 내내 천하의 장난꾸러기로 지낸 어린 영학. 잇몸이 죄 시커매지도록 머루를 따먹으며 해가 다 지도록 뛰어다녔다.

두 발로 대지의 중력을 느끼고 두 손으로 공기의 흐름을 느끼던 기억을 품고 소년은 어른이 됐다. 정통 조각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로마에서 8년간 조형문화를 공부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한국의 담담한 아름다움이 그리웠다. 많이 가지려 하고 많이 알려 하는 욕망을 고만 다스리고 텅 빈 곳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니 두고 두고 살 집을 고르면서도 선택의 기준은 복잡하지 않았다. 첫째, 벗과 일이 있는 서울에 살되 자연과 닮은 곳이길 원했다. 둘째, 크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쓸데없이 넓으면 청소만 번거롭다는 심산이었다.

 

돌과 물과 풀이 서로 어울리네

이 집에 산지 서른 해가 가깝다. 서울 한복판에 깊은 정원을 가꾸며 ‘고생길 훤하겠다’ 걱정도 됐지만 멈출 수야 없었다. 이끼를 키우기 위해서는 서둘러 굵은 모래를 깔고 밑공사를 새로 다 해야 했다. 골방에서 작업에 빠져있다가 잠시 허리 펴고 둘러보며 휴식과 사색을 취하는 귀한 공간이니 정성을 거둘 수 없었다. 오브제와 공간이 무람없이 어우러지길 원했다. 게다가 대한민국 제일 가는 예술가의 안목을 말해 무엇하랴.

“나는 울긋불긋한 꽃을 안 좋아해요. 푸른 색깔만 원하기에 특히 이끼를 아끼는데 이 녀석이 유여간 까다로워야지요. 이끼는 음의 식물이라 볕을 세게 쬐면 일순 타 버려요. 타지 않게 습도를 잘 맞춰줘야 살지요. 얼핏 자라지 않는 것 같아 보이지요? 습도와 온도에 따라 자라는 정도가 미묘하게 달라요. 사시사철 내가 원하는 정도로 알맞게 기르려면 작품을 한 개도 못 만들 겁니다. 그러니 어느 정도 포기할 줄 알아야 해요.(웃음)”

정원을 가꾸어보면 안다. 얼마나 계절에 민감해지는지. 사철이 뚜렷한 한국 땅이다 보니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가꾸는 법이 다르다. 이끼와 대나무와 은행나무의 법이 각각이다. 어느날은 고개 한 번 못 들고 부부가 종일 잡풀을 뽑는다. 게다가 제대로 할라치면 1시간마다 물을 살금살금 뿌려주며 촉촉함을 유지해줘야 이끼가 잘 자란다. 실수로 물이 고이면 이끼가 썩기 때문에 늘 보슬비 내리듯 해야 하니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오랜 시간 동안 내외는 같은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 “정원은 사람이 부지런히 살기 위해 가꾸는 것이구나” 그래도 정원 덕에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 쉴 틈 없이 움직이니 두 뺨은 불그레해지고 눈빛은 반짝인다. 새벽같이 일어나 저녁이면 잠이 드니 작업 일정을 어기는 일도 없다.

볕과 물의 정도를 세심하게 조절해 줘야 하는 까탈스러운 선태식물. 그럼에도 이영학은 이끼를 점점 더 사랑하게 된다고 고백한다. 사랑을 준 만큼 표시가 난다는 점이 본인의 우직한 성정에 맞는다. 잘 자란 이끼를 볼 때마다 사람의 힘과 시간의 무게를 다시 한번 배우게 된다. 겨울에도 푸른 빛을 잃지 않는 강직한 점도 마음에 든다. 잠든 듯 조용했던 포자들이 눈을 헤치고 봄을 맞아 다시 올라오면 생명의 싱그러움이 느껴져 덩실덩실 춤추고 싶을 정도로 벅찬다.

무기교의 기교, 최소한의 표현을 담은 작품들

이영학에게 정원이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예술과 직결되는 장소다. 그는 버려진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해 왔다. 십수년간 전국을 돌며 낡은 농기구와 살림도구를 주워 모으자니 장돌뱅이 같고 대장장이 같았다. 그의 손에서 장날 엿장수 손에 딸각거리던 가위는 소가 되었다. 어머니 손에 닳디 닳은 다리미를 오리로 만들었다. 연탄집게에 낫을 더하면 한 마리 학이다. 기막힌 눈썰미로 적합한 모양의 도구를 쏙쏙 골라 상상의 힘을 더한다.

 

세월의 풍상이 더한 돌도 그가 오래 천착해 온 소재다. 정원에 놓인 돌들은 가까이 가서 보니 한 점 한 점 놀라운 예술 작품이다. 질박한 질감을 그대로 살린 채 가운데를 네모나 동그라미, ㄱ자로 파 낸 화강암의 고아함이 일품이다. “없는 걸 새로이 만들어내는 건 내키지 않습니다. 본래 있는 것에 조금의 정성을 더하는 최소한의 작업이 즐겁지요. 거추장스러운 것은 지우고 반드시 있어야 할 알맹이만 담는 게 내 방식입니다.”

 

정원이 사람에게 구원이 될 때

가장 좋은 식재료를 골라 몇 시간부터 요리를 준비하고 손님이 도착할 시간이면 미리 문에 나와 있는 성정. 그의 수많은 벗이 증언하듯 이영학은 사람을 참 정성스럽게 대하는 이다. 그럼에도 사람을 만나면 살갑기보다는 ‘디게 틀털할’ 뿐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눈을 맞추지 못하고 수줍음을 감추지도 못하고 맥주를 마셨다)

서울에 오래 살았어도 제 고향 말을 버리지 못하는 경상도 사람이고, 사무적인 사회관계를 어려워 해 잃은 것도 많다. 예술에 관해서는 한사코 타협하지 못하면서도 아이들을 길러내기 위해 예술가로서 말못할 어려운 일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무얼 잘 모르겠고 많은 것이 막막할 때마다 일어서 정원을 내다 봤다. 들숨 날숨을 몇 번 쉬면 다시 돌과 쇠를 만질 수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에게 정원이 구원이 될 수 있다 권한다.

“소비하고, 소비되는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일에 지칠 때 당신만의 정원을 가꾸세요. 자연은 소리를 높이는 법이 없지만 늘 새로운 방식이니, 틀림없이 신비를 느낄 것입니다. 늘 두고 보면 어느새 낙천적이 돼요. 모든 것을 받아들이게 되지요. 겨울이면 이끼가 눈에 덮이지만 봄이 오면 또 파랗게 올라옵니다. 그러니 슬플 일도 우울할 일도 없습니다. 그저 정원에서 매일 아침 숨을 들이마시세요. 작은 구원이 되어줄 겁니다.”



KB프리미엄 맴버십 매거진 <골드앤와이즈>

글 김은성

사진 김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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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네치킨 문화매거진 <해피투데이>

글 김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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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6.14 15: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ant-man 담벼락지기 2016.06.14 16: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이고 이렇게까지 길게 안적어도 보내드리는데 ㅎㅎ 당장 보내드리고 싶은데, 스마트폰 버잔에서 보내는 방법을 모르겠네요. 내일 보내드릴께요.하루만 기다려주세요 ^^

미남미녀가 아니어도 괜찮은

셀피의 기술



두꺼운 뿔테 안경으로 얼버무리거나 고개를 숙여 머리칼로 뺨을 가린 회피형 셀피는 그만. 잘 벼린 셀피 기술은 현재의 나를 더 사랑하게 만든다.  15초면 된다. 최고의 셀피를 찍고, 그 모습으로 지금 이 시절을 기억하자. 미남 미녀가 아니라도 괜찮은,호감형 셀피 기술 몇 가지를 소개한다.


빛은 중요하고 중요하고 중요하다. 피붓결은 고르고 이목구비는 또렷하게 만들어주는 조명이 완비된 곳으로 가자. ‘소개팅하기 좋은 카페로 검색되는 곳이라면 적당. 허나 시선이 부담스러운 셀피초보라면 집이 최적지다. 음식 사진 촬영시 흰 우드락으로 반사판을 만들어 찍듯, 흰 벽에 등을 대고 찰칵! 컴퓨터 화면 앞도 괜찮다.

사실 이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곳은 역시 욕실이다. 하지만, 참아라. 희뿌연 조명 아래 거울을 향해 미소를 지어봐야 역시 뒤편의 변기가 걸린다. 인공광에 익숙해졌다면 자연광도 맘껏 활용해 보자. 인스타그램 셀러브리티처럼 역광셀피, 노을셀피, 몽환셀피(가장 밝은 곳을 향해 스마트폰을 뻗으면 된다)등 다채로운 빛의 조화를 즐기자. 지겨운 내 얼굴이 빛에 따라 얼마나 달라 보이는지 알면 금세 셀피중독자가 될 것이다.


각도는 2가지다. 팔의 각도가 첫째, 얼굴 각도가 둘째. 팔은 쉽다. 고수들은 의도하는 분위기에 따라 팔의 각도를 선택한다. 지드래곤을 필두로 남성 아이돌들은 로우앵글+클로즈업+무표정+역광 셀피를 올린다. 하지만 흑인 힙합 부자의 거만한 이미지를 원하는 게 아니라면, 지양하자. 초보에게는 ‘45가 최선. 얼굴의 각도를 찾는 건 시간이 좀 걸린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고, 최소 자기 나이 정도는 찍어봐야 베스트 각도를 알 수 있다.(35살이면 35! 어릴수록 아무렇게나 찍어도 잘 나오니까..,) 목과 팔이 뻣뻣해질 즈음이면, 소녀시대 제시카의 왼쪽 얼굴 사랑을 떠올리며 기운 내자. 드라마에서조차 왼쪽 얼굴을 고집하는 그녀도 있는데, 싶어 힘을 내게 된다.

만약 아무리 찾아도 근사한 각도가 없다면? 얼굴 중 가장 괜찮은 부분만 강조하자. 눈썹이 짙고 이마가 반듯하면 위에서, 오른쪽 쌍커풀이 자연스럽다면 오른쪽에서 찍는 식이다. 외모에 관해 단 한번도 칭찬받은 적이 없다면? 현재 당신을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이에게 물어라. “나는 어디가 가장 예쁘니(멋지니)? 사랑한다면 한 부분 정도는 말해주겠지. 얼굴보다는 몸이 나은 경우라면, 카메라를 아래로 내리는 것도 방법이다. 여성이라면 가녀린 쇄골이나 반듯한 어깨선, 팔 라인, 클리비지 등을 살짝 보여주는 것도 괜찮다. , 거울에 비친 힙 라인은 한번 더 고민해 보고 올려라. 남성이라면 강조보다는 절제를 떠올리자. 피트니스 클럽에서, 상의를 입지 않은 채, 아령을 든 포즈만은 제발 자제할 것! 차라리 핏 좋은 셔츠를 입고 팔근육을 은근히 드러내라. 셀피 월드에서 과함은 무리수요 절제는 미덕이니라.

각종 셀피 도구와 셀피 어플을 활용하는 것도 셀피족의 여흥이다. 셀카봉은 만원 안쪽이면 산다. 포인트는 미처 준비하지 못한 채 촬영당한 것 같은 아련함! 연인의 부름에 대답하듯 으응?’ 소리를 내며 돌아보라. 타이머를 맞추고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리면 살짝 흐트러진 머리카락도 함께 연출된다. 블루투스 셀카 리모콘과 셀카 드론 등 최첨단 기술에도 눈 돌려보자. 셀피 어플은 필터와 편집툴은 물론 무음기능도 있어 셀피 기술을 단숨에 업그레이드한다. 몸매 보정앱은 한번 손대는 순간 빠져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이지만, 자아의 충족에 이만한 게 또 없다.


얼굴 셀피가 왠만해졌다면 이제는 비전형적 셀피에 도전할 차례다. 수도꼭지, 비온 뒤 고인 물, 노트북 모니터, 공사장 가림판,자동차 미러 등에 비친 나를 찍다 보면 당신도 셀피 아트를 하고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SNS에 바로 올려 검증을 받아야 한다는 거다. 무플이면 내리고(진짜 별로라는 뜻), 당신의 반려동물이나 음식에 관련한 답글만 달리면 그럭저럭, “이거 너 맞아?”면 성공적이다. 성공 단계에 다다르면 꼴불견 셀피만 조심하면 된다. 눈물을 또르르 흘리는 나, 너무 피곤해 고이 잠든 나,외제차 키나 고가의 지갑 등을 든 나 등이다.

마지막으로 셀피 기술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마인드다. 유쾌하고 당당한 마음일 때 최적의 표정과 포즈가 나온다. 무뚝뚝한 당신이라면 가장 흥겨워지는 음악을 틀어도 좋겠다. 더 좋은 건, 가장 사랑하는 것을(: 치맥, 하이킹, 연인의 이름 등) 10번 외치고 바로 찍어라. 기막힌 셀피가 탄생할 거다.

 

*셀피: 한국식 영어로는 셀프 카메라. 줄여서 셀카.

2013년 옥스포드 대학 출판사가 올해의 단어로 선정할 정도로 일반화된 단어다.


삼성카드 매거진S

자유기고가 김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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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맥주홀릭 갱생기

 

 

모든 중독은 견딜 수 없음에서 비롯된다. 대상 때문에 행복감을 느끼면 애호가요, 대상이 사라진 자신을 견딜 수 없으면 중독자라든가. 주저하는 성격 탓에 중독단계에까지는 채 도달해 보지도 못했지만 비스무리한 감정에 한 발 담가 본 적은 많다. 햇살 아래 드러난 피부와 내면이 지저분해 견딜 수 없을 때 거울을 피하기 위해 활자에 빠져들었고, 담배 없이 제 스스로 길고 깊은 호흡을 할 수 없을 때 니코틴에 손을 뻗었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달콤함 외에 그 무엇에도 시큰둥할 때 다른 곳을 바라보는 연인의 시선에 코가 막혀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울어댔다. 몇 분 동안의 친절과 관심의 샤워가 간절했을 땐 쇼핑을 하러 나섰다. 그리고 그 중 가장 효과 빠른 진통제가 있었으니, 바로 맥주, 오 마이 달링.

 

다른 술도 아니라 오로지 맥주. 화학적 향이 거슬리는 소주는 그닥. 도토리묵이나 파전 없이는 상상 안 되는 맨 막걸리도 별로. 극심한 두통을 몰고 오는 포도주도 패스, 향이 근사하지만 홀로 사 마시기엔 고가인 데낄라도 no.

 

그런데 맥주는 자신 외에 아무 것도 필요로 하지 않으니 참으로 독립적인 정신의 술이 아닌가! “날 마셔요, 베이비~”라는 듯 은빛 표면으로 트윙클 트윙클 유혹하는 500ml 장신 ‘그 이’와 갈급함에 이글대는 나의 진공청소기 목젖만 있으면 완벽했다. 쉽고 빠르고 부담없고 청량한 하룻밤의 연애.

 

빠르고 부담없는 ‘Oh, My Instant Darling’

그럴 때가 있다. 함께 마셔 줄 친구를 떠올리고 시간약속을 잡고 적당한 술집을 찾기도 귀찮을 때, 얼른 취하고 얼른 깬 후 업무로 돌아와야 할 때. 그럴 땐 그저 술과 나 둘이 간단히 해치워야만 하는 거다. 알코홀릭의 1단계가 혼자 마시는 거라던데, 그런 위험경고야 충신 모가지 자르듯 단칼에 무시하고 백인백색 매력이 넘치는 맥주 애첩을 양팔에 낀 폭군으로 살아왔다.

 

할인마트에서 쟁여온 버드와이저에 질리면 카페 벨로주의 산 미구엘이나 이리카페의 쨍한 생맥 한 잔이 맥주 무한교도의 신앙을 공고히 해 주었다. 캔맥주를 텀블러에 담아 나와 커피처럼 홀짝대며 걷는 밤산책도 음악만 있으면 청승맞지 않았다. 누구는 바쁘면 음주량이 현격히 줄어든다는데 웬걸, 네 시간씩 자며 일할 때도 악착같이 찾아 마셨던 나다.

 

미친듯이 쓰기 싫은 글을 쓸 때는 ‘낮맥’도 용인됐다. 빨대를 물고서 허연 한글창을 노려 보며 읊조렸다. ‘짐의 고독과 스트레스가 과중하니 마실 권리가 응당 있노라, 간과 피부 건강에 관해 나불대는 신하들은 그 입 당장 다물라!’

 

술 없이도 취한 나날

태국 카오산로드에 다녀왔다. 그리고 맥주와 이별했다. (이 선언을 하러 말이 길었다. 장기연애 이별기로는 택도 없이 짧겠지만, 아무튼지간에.) ‘장기여행자들의 쉼터, 전 세계 잉여들의 천국’인 카오산은 비어 창과 비어 씽이 젖과 꿀처럼 흐르는 가나안이다. 밥 말리에 맞춰 어깨를 흔드는 상체 탈의 청년에게 내가 골반을 흔들며 다가가 그의 칵테일 바케스에 빨대를 꽂아 마시면 싸움 대신 친구가 되는 곳. 백발 노인 여행객이 낄낄대며 이 젊고 어리석은 영혼들을 구경하는 곳이 바로 카오산이다. 그런데도 아니 마셨다. 길거리 바에서 만난 장기여행자 언니가 맥주를 퍼붓는 내 꼬라지를 지켜보더니 하는 말, 그게 ‘Rehab’의 계기가 됐다.

“뭐할라꼬 그리 퍼 마시노. 양놈이 땔롱 업어가도 모르겠드만. 여자 혼자 다닐 때는 조심 안 하는 척 잘 놀면서도 늘~ 조심해야 한다.”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처음엔 조심하느라 안 마셨는데, 이거 참 끝내주게 재밌는 거다. 장기여행자 코리안 언니들이 물만 마시고 놀아제끼는 모습은 그야말로 예술적이었다. 술집에 안 들어가도 길에는 놀 게 널려 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흘러나오는 마룬5 노래를 따라 부르고, 심심하면 레이디보이 언니들 가슴 모양 품평하고, 태국 택시기사 아저씨들 호객 돕고, 레알 마드리드 & 바르셀로나 경기 때는 미쳐 날뛰는 스페인 애들과 덩실덩실 춤도 추고. 무더위와 레게 뮤직과 이성의 끈을 풀어헤친 여행객들이 자연스러운 취기가 되어줬다.

 이 놈과 헤어지려 저 놈과 사랑에 빠져버리는 가벼운 여자처럼, 나는 이국의 불안과 내가 뭐해먹고 사는 앤지 아무도 모르는 여행지의 황홀에 빠지기로 했다. 그래서 적어도 5일 동안은 술과 단기 이별했다.

 

“이제는 불행할 때가 아니라 행복할 때 마실 거야.”

귀국 비행기에서 찬찬히 돌아봤다, 그동안 왜 그리 부어댔나. 폭식이 음식이 맛있어서가 아니라 마음이 허해서 먹어서라도 채우고 싶어서이듯, 상황이 어색하고 불만족스러울 때마다 나는 폭음에 눈감았다. 소개팅 상대가 끝도 없이 환경보호에 대해 논해댔을 때, 일에 시달린 뇌주름에 시멘트 가루가 낀 것 같았을 때, 오랫동안 무척 보고팠던 사람이었는데 서로의 변화 때문에 대화가 수제비 반죽처럼 뚝뚝 떨어졌을 때, 그것들을 외면하기 위해 들이키고 또 들이켰다.

 

나와 상대, 세상과 일에 대해 사랑으로 충만할 때에는 마시지 않아도 황홀했다. 나의 맥주사랑은 다른 괴로움에서 도피하기 위함이었으니, 결코 순수하다고 볼 순 없었으리라.

 

욱하고 울컥할 일 투성이인 대한민국에서 절대금주를 외치진 못하겠다만, 맥주를 ‘인스턴트 달링’이 아니라 ‘롱 디스턴스 달링’으로 변화시키자는 계획 정도야 세울 수 있지 않을까. 10년이면 충분히 마셨다. 어제부터 싱하 맥주병 하나에 차곡차곡 돈을 모으기로 했다. 맥주 한 번 참을 때마다 그 만큼의 지폐를 쏙, 어이없어 화내는 호가든과 아사히에겐 “자기야, 우리 오래오래 그리워하다 만나면 더 달고 짜릿할 거야.”라고 토닥여 주고.

 

저금통이 꽉 채워져 더 이상 안 들어가게 되면 여지없이 깨뜨려 태국행 비행기 값을 치를 거다. 그 기간 동안 더운 나라를 여행하기에 적당한, 가볍고 튼튼한 몸이 마련되면 더욱 바랄 게 없을 테고. 그 때 마실 맥주의 황홀경은 내가 아는 미사여구로는 아직 수식도 못하겠다!

 

빅이슈 재능기부

자유기고가 김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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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디 홍보대사 배우 이진욱 & RS7 스포트백

소년의 탐구심, 탈주의 쾌감



차는 때로 숨막히는 현실에서 탈주하는 듯한 공간 이동의 쾌감을 준다. 이진욱이 운전과 연기에 빠져있는 이유는 그것이 이동이라서다. 이곳 아닌 저 너머로, 나 아닌 초능력자로 점프하는 그 순간.


편견 하나. 남자배우는 댄디거나 아티스트라고 여겼다. 적어도 인터뷰 때 만큼은. 매끈하게 제련한 애티튜드와 주변이 시끄럽지만, 나는 당신에게만 집중하고 있어요라는 착각을 유도하는 눈빛이 전자다. 후자는 예술에 대한 전방위적 취향과 기이한 습관을 전시한다. 이진욱에 관한 기사에는 유독 ‘4차원이라는 낡은 문구가 많았다. 글쎄, 이진욱은 세계가 온통 단순한 기쁨 투성이인 소년 같았다. “자동차와 비행기 같은 탈것이 저는 아직도 너무 신비로워요.” 이제 서른다섯이 된 이 남자에게는 배우라는 특수한 직업도, 궁극의 하이테크놀로지의 집합인 RS7 스포트백도, 때로 연애나 음악도 순수한 탐구대상이다.

 

장시간 화보 촬영에 지치지도 않는지, 그는 대화가 머뭇거릴 때마다 유독 동그란 두 눈동자를 반짝이며 웃었다. “전에는 수줍음이 많았죠. 나이가 드니까 편안함과 자연스러움의 미덕을 알겠어요. 촬영장에서도 먼저 장난 치고 말을 트는 편이에요.” 다짐이나 정신무장 같은 것과 거리가 멀기에 인생의 모토 따위를 세우지는 않지만, 자연스러움이 가장 사랑스럽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서먹할 땐 날씨가, , 좋죠?” 같은 싱거운 말이나 하는 게, 초고속으로 오래 달리는 것보다 느긋하게 풍경 바라보며 운전하는 게 취향. 예능이나 가쉽을 통해 이슈를 선점해 보라는 조언을 들을 때마다 고개를 젓는 이유다.

억지와 무리가 싫어요. 연예계에서 기사거리가 되는 건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제 성격이 천하태평자체라 그 이슈를 오래 끌지도 못할 걸요.(웃음).”

 

스포트 라이트말고도 신나는 건 참 많다. 음악과 탈것, 여행, 양장본 등 홀로 고요히 즐기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그. 단어 사용이 어수룩해도 취미의 주인이 가진 에너지에 빨려 들어가는 대화가 있다면, 그의 말이 그랬다. 이진욱은 미간에 주름을 채우고 스마트폰 안을 한참 노려본다. 이윽고 방 안에 로린힐의 ‘Mr intentional’이 가득 찬다.

계보 따지며 한 장르만 파는 스타일은 아니고 고루 찾아 들어요. 까에따노 벨로주, , 콜드플레이, 판소리까지. 청음 수준은 아마추어일 텐데 뱅앤올룹슨으로 들으면 음색 구현의 질이 다르단 건 느껴져요. 비오는 날 음악을 틀고 운전하면, 더는 바랄 게 없어요. 빗소리와 기타,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다는 느낌. 3가지면 완벽한 휴식이죠.”

다음엔 돌연 <매드맥스-분노의 도로>가 등장한다. 캐릭터의 특성을 고스란히 빼닮은 독창적이고 괴기스런 디자인의 차를 보며 어떻게 만든 건지 궁금해서 앉아있기가 어려웠을 정도라고. “육중한 8기통 엔진이 뿜어내는 파워, 18개의 바퀴. 흥분 안 할 수 없죠.(기계 오타쿠 같아요) 약간 그렇죠? 카 체이싱 영화를 보면 테크니컬에 대해 중얼거려서 주로 혼자 봐요. 자동차 후드도 종종 열어 보는데 가지런히 정리된 시스템을 보면 짜릿하죠. 차량 정비도 배워보고 싶은데 자제 중이에요. 아직은 차의 미학이나 스토리를 즐기는 수준이 좋아서

단행본 한 권 잡으면 조사 하나 빼놓지 않고 읽으며, 석연치 않을 때마다 첫장으로 돌아가는 태도는 그의 고지식함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을 좌절케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절망>을 들여보였다.) 올해 초 아우디 홍보대사 활동을 시작한 후 차에 대한 관심은 더욱 지극해졌다. 틈나면 지인을 태우고 초고속을 경험시킨다. 차의 하이엔드 기능을 알게 되면 누구나 좋은 드라이버가 되고 싶어질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15년 간 운전을 하며 원했던 기능이 이 차에 모두 있었어요. 미드<히어로즈> 보셨어요? 하늘을 나는 건 가장 쓸모 없는 초능력이라고 말해요. 그런데 저는 신이 소원을 들어준다면 비행 능력을 달라고 하고 싶은 사람이거든요. RS7 스포트백을 몰 때마다 초능력자가 된 것 같죠. V8 4.0리터 가솔린 직분사 트윈터보 엔진은 출력을 560마력에 이르게 하는데, 저는 법의 한계를 넘지 않을 정도로 궁극의 속도감을 느끼는 걸 즐겨요. 그건 마치 비행 같죠.”

요즘은 일을 마칠 때마다 운전을 한다. 인간이 커다란 쇳덩어리를 움직인다는 조종의 쾌감, 이제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이동의 해방감이 스트레스를 단숨에 날려서다. 핀란드에서 열린 아우디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도 인상 깊은 체험이었다. “헬싱키에서 비행기로 1시간 넘게 걸릴 정도로 굉장히 먼데도 성지를 찾아온 카 매니아들로 가득했죠. 거의 반쯤 차에 미쳐있는 사람들인데, 그 열기 어린 눈빛들을 관찰했죠. 그 감정을 배우고 싶어서요.”

이동수단으로의 효용보다는 이동의 즐거움을 사랑하기에, 어느 나라에 여행을 가든 꼭 차를 렌트해 도로를 주행해 보는 그다. 하지만 이진욱은 차를 조종하는 쾌감보다 중요한 건 차를 통제할 줄 아는 능력이라 여긴다. 좋은 차를 오래 운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운전학교 선생님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남긴 그의 마지막 말을 전한다.

일본은 도로가 무척 좁고 표지판도 어렵거든요? 그런데도 교통법규를 100% 지켜요. 가장 잘하는 운전은 그 사람들처럼 안전하게 운전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초고급 차를 탈 때 먼저 챙겨야 할 건 자제와 주의력이에요.”


아우디 매거진

자유기고가 김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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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은성이 사는 동네 백석동

반듯함과 수더분함 사이




시골은 벌레와 거름 냄새가 싫다. 그렇다고 가로수 길에 가면 불안과 강박으로 온몸이 따끔거린다. 이런 애매하고 어정쩡한 취향의 기자에게 백석동은 오래 입어 편해진 티셔츠 같다.

글 김은성 사진 신규철


 

열 일곱, 처음으로 아파트에 살아보는 마음은 부풀대로 부풀었다. ‘신도시라는 명칭도 신났다. 엘리베이터도 경비 아저씨도 단지 내 공원도 신기했다. 하지만 고만고만하면, 비교가 잘 된다. 백석-마두-정발-주엽으로 이어지는 신도시 동네들은 크기도 모양도 거기서 거기. 우선 동네 이름이 맘에 안 들었다. 근처에는 별빛마을, 달빛마을, 햇빛마을, 은빛마을이 있었다. 개그맨 유세윤이 백신중학교 재학 시절 공모전에서 수상한 이름이랬다. 특별해 보였다. ‘흰 돌이 많다는 뜻의 백석동은 말 머리라는 뜻의 마두동만큼 웃기지도 않았다.

신도시에 대한 감흥은 금세 밋밋해졌다. 홍대나 강남을 떠돌았다. 신입생 시절 만취해서는 아무 데나 잘못 내리기 일쑤였다. 급하게 개발된 신도시의 아파트 단지는 모두 어슷비슷하게 생겼다. 백석역 근처엔 마두역처럼 대형서점이 있는 것도, 주엽역처럼 백화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서울 사람들이 이렇게 외치면 부끄러웠다. “터널나이트 있는 동네죠! 대한민국에서 제일 거대한 나이트클럽.”

이리 오래 살 줄 몰랐다만, 30대가 되어 몸도 맘도 편한 걸 원하게 되니 백석동의 덤덤한 듯 담박한 맛을 좀 알겠다. 정발산이10분 거리라 돈 한 푼 안 들이고 힙업 운동이 가능하며, 내려오는 길엔 정혜사에 들러 40대를 위해 고요히 기도드릴 수 있다. 몸과 영혼만 다스렸다 싶어 아쉬우면, 백석 도서관 옆 벤치에 누워 고양시 작가 선집을 읽으면 되고. 서울보다는 땅 값이 저렴하여, 일 없이 비워 놓은 널찍한 공간이 많다. 소음과 높은 인구밀도에 질려 귀가한 밤, 쉬이 쉬이 나뭇잎 스치는 소리가 들리는 밤산책은 안정제 노릇을 한다.

 

백석도서관

서울에서 자취할 때 좀 당황했다. 집에서 5분 거리에 도서관이 없다니. 일산의 도서관들은 환경, 인문학 등 각각의 주제로 특화돼 있으며 인구 비례당 개수가 많아 접근도가 높고 한적해 책 읽기에 좋다. 백석도서관은 3층 짜리 아담한 건물이지만 잡지 134종과 일반도서 12만 권 이상을 알차게 보유했다. 미래 에너지 환경교육이나 청소년을 위한 글쓰기 교육 등 강의 개발도 열심이다. 아람누리 도서관처럼 인테리어가 예쁘거나 마두 도서관처럼 책이 많지는 않지만, 소박한 멋이 있다. 문의 031-8075-9090.

 

정혜사

십오년 째다. 정발산 산책에서 돌아올 때마다 절을 향해 다짐했다. “언젠간 꼭 들어가리.” 천주교 신자지만 절에도 관심 많다.땅 좋고 물 좋고 깊은 산 속 고즈넉한 산사도 좋지만, 도심에 파고든 절에는 자꾸 맘이 간다. 친근한 미소를 연습하는 도도한 친구 같아, 귀여워서다. 도심 포교당인 정혜사는 조계종 송광사 분원이다. 1998년 개원한 후 일산 불교 포교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처음 불교에 입문하는 이들을 위해 기초교리와 사찰문화, 불교 예절을 쉽게 배울 수 있는 불교 입문반을 운영한다. 불교 경전반, 참선반을 봄과 가을에 각각 3개원 과정으로 연다. 문의 031-907-8901.

 

수 한복 갤러리

우리는 광고 안 한다니까!”, “아이고. 저희 기사는 돈 안 받아요.” 하루에도 몇 통씩 걸려 오는 마케팅 전화 때문에 기자마저 의심했던 사장님 부부. 동네 사람이라 반기며 결 고운 치마, 저고리, 바지들을 보여 주셨다. 수 한복 갤러리는 장롱에서 오래 묵힌 한복을 고쳐 입거나, 기쁘고 특별한 날에 대여해 입을 수 있는 곳이다. 한번 온 손님은 변형한복이 아닌 정통한복이라 물리지 않는다”, “옷이 우아하고 담백하다며 단골이 된다. “동네 사람들이 자주 와 구경했으면 해요. 한복의 색과 선을 눈에 자주 담으면 마음도 건강해지거든.” 부부가 작은 가게 안에서 도란도란 오래오래 가게를 운영하는 비결도 한복 덕인가 싶다. 문의 031-902-5678

  

시민종합동물병원

소개팅에 나가 동네 자랑을 할 때마다 나불댔다. “일산에 수의사계의 허준이 계신 건 아세요?” 진료할 때 꼭 필요한 말 외에는 일절 입을 안 여시기에 사담 한번 나눈 적 없지만, 시민종합동물병원 원장님은 김은성의 가장 큰 자랑거리다 올해 열다섯 된 내 새끼 흰둥이가 아토피와 심장발작과 난소암을 이겨낸 건 모두 원장님의 묵묵한 진료 덕분이다. 홈페이지 하나 없고, 기다리는 손님들에겐 떡이나 만두를 권하는 시골스러운 병원이지만 오늘도 반려동물 커뮤니티에는 감동 의 간증이 흘러넘친다. KTX를 타고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며, 해외에서 약을 주문하는 사람도 있다. 페럿 전문병원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유기견 체리(사진)는 얼마 전 미용 실장님에게 입양되어 종일 병원에 머물며 마스코트 노릇을 하게 됐다고. 문의 031-911-7346.

 

매드

백석동은 이른바 아저씨 술집들이 즐비하다.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길은 골목 골목 유혹의 도가니다. 숯불에 목살과 오겹살 지지는 냄새, ‘!’하고 맥줏잔 부딪는 소리. 허름하니 속 편한 분위기의 주점들도 좋지만, 브런치에 와인 한 잔 하고픈 주말 아침도 있는 법. 얼마 전 문 연 매드의 얼룩말 무늬 파란 간판이 아기자기한 것 고팠던 백석 여자들을 끌어당긴다. 말린 과일을 넣어 구운 식전 빵과 베이컨을 아끼지 않고 달걀 노른자를 올린 까르보나라, 네 종류의 치즈를 얹은 꽈트로 피자를 먹을 수 있는 펍 앤 카페테리아. 마감이 끝나면 달려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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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고로

백석 성당에서 만나 비밀 연애를 하던 후배가 그랬다. “고로에 못 가서 너무 슬퍼요.” (고로는 성당 바로 옆!) 카페 고로는 백석동 사는 커플들이 애정할 만한 맛과 분위기를 지녔다. ‘어머니가 직접 담근 레몬청을 컵이 넘치도록 우겨넣은 레모네이드와우리나라 1호 바리스타인 대구 커피명가 안명규씨의 원두만 사용하는 커피류가 특히 좋다. 나직나직 목소리도 조용한 주인장이 직접 골라 트는 음악들은 가을밤 카페 정취를 고조시킨다. 문의 070-7582-0529.

 

유해피 심리상담센터

시끌벅적한 종로나 강남이 아니라 장바구니 들고 다니는 한적한 곳으로 상담을 받으러 갈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얼마 전, 백석동에서 채소 싸기로 유명한 엘마트가 있는 올리브 상가에 유해피 상담센터가 개소했다. 아동, 청소년, 성인이 고루 방문하지만 의외로 중장년 여성들이 많이 찾아온다. “누구에게도 맘 편히 못하는 이야기, 다 털어놓고 오세요라는 자녀의 권유에 쉽게 마음을 연다고. 세 명의 심리 전문가가 심리 검사, 심리 상담과 더불어 미술, 영화, 놀이, 연극 치료 등의 맞춤 심리 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상담 후에도 온라인, 전화 등으로 홈케어 서비스를 이어간다. 문의 031-901-0011.

 

팔각정과 알미공원

지붕을 여덞 모가 지도록 지은 정자를 팔각정이라 한다. 주로 경치 좋은 곳에, 벽 없이 기둥과 지붕만 있는 기와집을 떠올리면 된다. 알미공원에는 칠각정인 백석전이 있다. 각 하나가 빠져 그런지 심리적으로(?) 더 자유로워, 스물 초입에는 패트병 맥주와 콘칩 대포장을 부려 놓고 해가 뜰 때까지 친구들과 떠들었다. 4700여 평에 이르는 공원 부지. 쥐똥나무 울타리, 소나무와 은행나무, 버짐나무, 잣나무과 철쭉과 진달래까지 500여 그루의 수목이 술맛을 도왔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팔각정에서 술병 불던 처녀는 이제 건강을 생각해 같은 곳에서 쌈채에 현미밥을 싸 먹고 메밀차로 입가심한다.


KTX매거진

자유기고가 김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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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돌이 가족, 정동진에서 해돋이를 보며 새해 소망을 빌다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예부터 아름다운 풍광을 간직한 천혜의 명승지로 꼽혀 온 정동진, 정동진에서 십여분을 달리면 만날 수 있는 묵호항으로 여행을 떠났다. 50년의 세월 동안 어두운 밤을 밝혀주었던 묵호 등대는 묵호항의 상징이란다. 언제나 등 뒤에서 가족이 걷는 길에 밝은 빛을 비추는 아빠의 마음도 이 등대와 같으리라.

 


 

연인의 설렘이란 씨앗 한 톨이 가족의 평안이라는 뿌리깊은 나무로 자라기까지

 

“휴무가 언제예요?”

“네? 왜요?”

“우리 언제 산책이나 할까요?”

 

‘쉬는 날이 언제냐’는 질문은 때로는 어떤 사랑의 시작이 된다. 그 사랑의 씨앗 한 톨이 자라나 가족이라는 아름드리 나무를 키우는 물과 햇살이 되어주기도 한다. 십년도 훌쩍 전인 어느 날의 오후, 이마트 매장의 한 순간도 그랬다. 스물일곱이라는 나이에 비해 훨씬 듬직한 미소를 가진 한 청년이 패션 매장의 한 아가씨에게 다가가 물었다. 누군가 호감의 이유를 물었다면 청년은 불현듯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101가지의 이유를 풀어내며 즐거워했을 것이다.

 

“웃는 게 너무 예쁘지 않아?”“눈이 초롱초롱한 게 별빛 같잖아.”“성격도 꽤 좋아보이지? 깐깐한 고객에게도 인내심있게 끝까지 친절하더라고.”“전에 보니까 파랑색이 잘 어울려. 파랑이 잘 어울리면 미인이라잖아.”“이유가 어딨어? 그냥 좋은데!”

 

몇 번이나 망설이던 아가씨는 용기를 내어 청년과 데이트를 나섰다. 어딘가 싱거운 듯, 어딘가 소년처럼 구는 행동도 좋았고, 단둘이 있을 때 어색하게 말이 끊기는 순간이면 괜스레 ‘핫하하하’ 소리내어 웃어제끼는 것도 호쾌해서 마음에 들었다. 꿈결같은 시간이 흐르고 다섯 달 후 정신을 차려보니 그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나, 어쨌다나. 뭐, 어떤가. 사랑은 홀림인데. 정신이 혼미해지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게 결혼이라는데.

 

연인의 설렘이 가족의 평안과 든든함으로 줄기를 뻗어올리고, 뿌리를 내린 지금, 딸 민지와 아들 남욱이 남매를 데리고 드라마 <모래시계>의 장면으로 유명한 정동진으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3년간 이마트 이문점에서 근무하느라 아내와 아이들을 청주에 두고 생활해 오느라 어지간히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던 아빠가 용기내어 신청한 가족여행 코스였다.

 

폭우로 서울에 물난리가 났던 2011년 여름, 아빠는 여름 휴가 계획을 깨면서 미안해할 수 밖에 없었다. 기러기 아빠 생활 3년, 오랜만에 핸드폰도 꺼두고 가족과 똘똘 뭉쳐 좋은 곳 보고 좋은 것 먹자는 행복한 약속은 퍼붓는 비에 흘려가 버렸고, 결국 점포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야만 했다.

 

여행의 백미는 본디 출발 전날의 설렘과 묘한 긴장이리라. 여행 선정 소식에 야물딱진 짠순이 아내는 “공짜야?”란 첫질문으로 웃음보를 터뜨리게 했고, 두 아이는 짐을 넣었다 뺐다 하며 두근거리는 표정을 지었다.

 

떨어져 지내기 전에는 아무리 바빠도 한 달에 한번씩 여행을 갔던지라 “아빠, 이게 ***일 만의 나들이인 것 아시죠?”“오랜만에 아버지가 장한 일 하셨습니다. 박수!” 라며 아빠를 놀리기도 하였다. 미안하기도 했지만, 한편 ‘이렇게라도 기회가 생겨 다행’이라는 생각에 기뻤다.

 

강릉 시내에서 동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18킬로미터를 달리면 만날 수 있는 작은 마을 정동진. “정동진은 한양(漢陽)의 광화문에서 정동쪽에 있는 나루터가 있는 부락이라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래. 신라 때부터 임금님이 사해의 용왕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기도 하고. 지금도 일년에 두 번 정월 대보름과 오월 단오날에 물고기를 많이 잡기를 기원하는 풍어제도 열린대.”

뭐든 미리 읽고 공부해가는 것을 좋아하는 똘똘이 스머프 남욱이의 깜짝강의에 엄마아빠는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붉게 솟는 새로운 해를 보며 흑룡의 기운을 받네

 

학교 갈 때는 궁둥이를 두드려도 졸려 하더니, 여행지에 와서는 알람도 없이 잠에서 깬 아이들. 제 스스로 파카며 목도리를 챙겨 입은 아이 둘을 앞세워 해변에 도착하니 아침 일곱시 반이다. 살을 에일 듯 차가운 바람, 한결 높고 세어진 파도의 철썩철썩 소리가 맨 피부에 닿는 듯 춥고도 춥다.

 

눈과 코만 빼꼼하게 내놓은 채 눈사람처럼 둥글게 싸맨 사람들의 모습에 쿡, 웃음이 난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기다림의 마음은 모두가 같으니 꽁꽁 숨은 해 앞에서 왠지 다들 친구가 되어버리는 느낌에 마음이 따뜻하다. “진짜 춥죠?”“해 뜨는 시간이 7시 38분이래요. 정말 그때 딱 뜰까요?” 허물없이 말도 건네게 된다.

 


 

“꺄아아!”

7시 38분의 알람은 한 아가씨의 비명 아닌 비명으로 울렸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노래를 불러도 새침하게 얼굴을 가렸던 해가 정해진 시간이 되니 둥글게 솟아 오르는 것이, 참말 마술적인 순간이다. 해풍에 비스듬히 누운 소나무, 철도를 적실 듯이 푸르고 푸른 동해, 깎아지른 해안절벽이 원래도 있었던 것이지만, 붉게 타는 태양이 떠오르자마자 몇 배나 환상적이고 아름답게 보인다.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소원을 빌기도 하고, 순간을 마음에만 새기는 것에 조바심이 나 카메라 렌즈 안에 담아보기도 한다. 뭘 빌었느냐고 물으니 “비밀이예요,”라며 입에 손가락을 대는 민지의 소원은 알 수 없지만, 민지와 남욱이 아빠의 소원은 훤히 알겠다. 그리고 엄마의 소원도 아마 아빠와 데칼코마니처럼 똑 닮았을 것이다. 부모의 소원이란, 늘 하나니까.

 

 

이야기가 있는 벽화로 재해석된 논골 담길, 바다를 수호하는 ‘천사날개’ 묵호등대

 

따끈한 찌개를 끓여 먹으며 언 몸을 녹인 후 십여 분을 달려 도착한 묵호 등대마을. 등대 마을은 얼마 전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어르신생활문화 전승 프로그램’ 사업으로 더욱 예뻐졌단다. 공공미술 전문작가들의 컨설팅으로 완성된 스토리 벽화가 온 마을을 동화왕국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벽화 아래에 선 아이들이 동화 주인공처럼 예뻐서 아빠는 연신 핸드폰 카메라 셔터를 찰칵찰칵 누르고, 셔터가 닫히는 순간 아이들의 어린 시절과 아내의 미소도 아빠의 가슴에 새겨진다.

 

“연년생이라 아내가 어린 나이에 기르며 눈물 콧물 다 뺐죠. 남편 없이 아이들 키우느라 생활력 강해져서 못도 잘 박고 무거운 가구도 척척 옮기는 아내를 보면 존경스럽기도 하지만, 속으론 많이 미안합니다. 아내에게도 아가씨 시절 새초롬한 모습이 있었는데 말이죠. 힘들 텐데도 주말에 가면 맛있는 음식 잔뜩 해 주면서 누워서 쉬라고 해 줘요. 제가 복이 많아요.”

아이들이 저들끼리 뛰어가는 뒤편에서 남편은 아내의 머플러를 고쳐 매 주며 한 마디 한다. 세상 어느 여자보다 귀히 여기겠다는 말 못 지켜서 미안하다고, 결혼 20주년에는 꼭 단둘이 해외로 여행가서 편히 쉬게 해 주겠다고. “아이구, 여행 와서 한 말 누가 믿어.”하며 곱게 눈을 흘기지만 아내도 계속 웃는다.

 

“아이들 피아노 콩쿨이며 태권도 승급심사며 함께 못 가니까 속상하고. 그래서 제가 전화하며 눈물을 보인 적도 많아요. 회사 일에 전력투구하는 남편의 모습은 물론 보기 좋지만, 아빠라는 이름 앞에서는 말할 수 없이 속상했죠. 어제 남편이 여행신청서를 읽어주는데, 또 눈물이 나더라고요. 감동했어요.”

 

바다를 수호하는 등대. 그 등대를 상징하는 그림으로 그려진 천사의 날개. 그 앞에 어깨를 잡고 나란히 선 네 명의 가족. 딸 민지를 아빠가 부르는 별명인 ‘만돌이’를 ‘김치’ 대신 외치며 짓는 기분좋은 웃음이 모두 닮았다.

 

성격이며 외모며 아빠랑 붕어빵이고, 그래서인지 아빠를 딸바보로 만든 ‘만돌이’ 민지, 1000피스짜리 퍼즐게임을 아빠와 하는 걸 가장 좋아하는 똘똘이 남욱이. 그리고 힘든 기러기 가족 생활 속에서도 ‘나는 아빠다’‘나는 엄마다’를 되뇌이며 오늘도 아이들을 위해 사는 아빠와 엄마. 새롭게 돋는 해를 보며 빈 소원은 별다르지 않았다.

‘가족이 늘 함께’, 해가 하나이듯 소원도 늘 그것 하나다.

 

신세계 사보 여행기사

글 김은성 사진 유승현


Posted by ant-man 담벼락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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