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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의 글/김은성

시간과 마음이 이루어낸 맑고 푸른 빛 조각가 이영학의 이끼 정원 _ KB프리미엄 맴버십 매거진 <골드앤와이즈>

시간과 마음이 이루어낸 맑고 푸른 빛

조각가 이영학의 이끼 정원



이영학의 오래된 정원은 그의 작품이 품은 담박함과 간결함을 닮았다. 옛 돌을 쪼아 낸 야트막한 홈에 맑은 물이 찰랑거린다. 물 위로 드리운 나무 그림자가 온화한 햇볕과 어울려 보기 좋다. 돌과 물과 풀의 꾸밈없는 어울림. 선생은 그것이 삶이라 말한다. “예술가의 생활이란 한 인간이 성숙하는 길과 다르지 않아요. 그침 없이 단련해 맑은 물이 되어 가는 거지요. 금이 아니어도 좋아요. 덜 완성됐어도 그 과정이 아름다우면 된 거예요. 예술은 덤덤한 노력 그 자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요.”

KB프리미엄 맴버십 매거진 <골드앤와이즈>/글 김은성 사진 김재이

 

 

“저걸 하나 훔쳐갈까.” 오랜 벗의 전시에 붙여 소설가 박완서가 건넨 글에서 가장 도드라졌던 글줄이다. 아무렇지 않게 놓인, 그래서 슬쩍 하나쯤 들고 가도 자리도 안 나게 생긴 돌확을 보다가 생겨난 삿된 마음을 고백한 말이다. 이영학이 물을 담아 풀을 기르기 전의 돌확은 그저 묵직한 바위일 뿐이었다.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이 “이 돌도 전시냐”고 물었을 정도다. 예술가의 작업에 별다른 더함과 뺌이 없다니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오랜 세월 이맛살을 찌푸리며 유일한 단어와 문장을 고르기 위해 애써 온 문장가는 생각한다. 꾸밈과 애씀이 없어 보기에 이리도 마음이 편안한 것일까. 벗의 작품은 시간에 닳아 더없이 자연스러워진 정자의 댓돌 같았다. 대갓집의 주춧돌처럼 듬직했다. 정을 들고 돌과 맞서는 대신 오래 바라보고 어루만진 덕이다.

그리하여 소설가는 벗의 속내를 곰곰 짚어본다. “이영학이 돌에게서 찾고 싶어 한 것은 숨어 있는 형태가 아니라 더 깊이 숨긴 돌의 꿈이 아니었을까?” 예술가의 솟아오르는 에너지가 아니라 다감한 기다림이 모든 작품에 닿아있다. 조금 수줍고 그만큼 잔정 많은 그의 성정은 돌과 이끼, 풀과 나무, 너른 흙에 거름처럼 고루 배어들었다. 정원과 작품 사이에 경계가 전혀 없다. 생활과 창작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지 않다.

 

연하고 수줍고 원초적인 초록의 향연

앞서의 글을 떠올리며 언덕을 오르다가 ‘이곳이구나’ 감이 왔다. 북한산 자락이 이어지는 수유동에 자리한 이영학의 집. 돌이 켜켜이 쌓여 있어 멀리서도 단단한 기운이 감지된다. 문을 열고 들어서노라니 어쩐지 아득해진다. 좁다란 길 양편에 책이나 LP처럼 쌓여있는 작고 큰 돌덩이들. 작품이라기엔 무던하고 자연이라기엔 하나 하나 남다른 오묘한 경지. 이끼와 풀과 나무가 품은 초록의 결이 무척 다채롭다. 연한 푸름 짙은 푸름 어둑한 푸름이 오롯한 개성을 품고서 하나의 커다란 푸름이 되어 있달까.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여름 고의 적삼을 걸친 선생이 현관에 서 반기고 서 있다. “무릉도원 같네요.” 얼이 빠져 제대로 된 어휘를 고르지 못하고 뻔한 말을 내뱉으니 선생이 웃는다. “사철 좋지만 초여름의 정원은 그만이지요. 창밖으로 바라보면 아, 좋다! 좋아! 소리가 절로 나와요.” 그러고 보니, 계절을 맞아 점점 깊어지는 햇볕이 이 무대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듯 하다. 주단 같은 이끼와 열심히 솟아오르는 대나무, 맑은 물 고인 돌덩이가 보드라운 햇살과 바람 안에 또 다른 세계가 되어 있다. 순하고 고요하되 밖을 향해 결계를 친 듯 고립적이다.

“늘상 쇠를 깡깡 치고 돌을 다듬는데 도심의 개미집 같은 아파트에서 살 수가 있나요. 너른 마당이 있는 집이어야만 했어요.” 바스락 바스락 타오르는 벽난로 소리를 들으며 선생의 말을 듣는다. 손수 기름을 먹인 베니어 합판의 것인지 응접실 가득 놓인 고목의 것인지 은은한 향내가 이야기의 정취를 더한다. 선생의 부모님은 북에서 피난 해 와 부산에 터를 잡고 살았다. 오르면 산이고 나가면 바다인 곳에서 어린 시절 내내 천하의 장난꾸러기로 지낸 어린 영학. 잇몸이 죄 시커매지도록 머루를 따먹으며 해가 다 지도록 뛰어다녔다.

두 발로 대지의 중력을 느끼고 두 손으로 공기의 흐름을 느끼던 기억을 품고 소년은 어른이 됐다. 정통 조각의 본고장인 이탈리아 로마에서 8년간 조형문화를 공부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한국의 담담한 아름다움이 그리웠다. 많이 가지려 하고 많이 알려 하는 욕망을 고만 다스리고 텅 빈 곳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니 두고 두고 살 집을 고르면서도 선택의 기준은 복잡하지 않았다. 첫째, 벗과 일이 있는 서울에 살되 자연과 닮은 곳이길 원했다. 둘째, 크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쓸데없이 넓으면 청소만 번거롭다는 심산이었다.

 

돌과 물과 풀이 서로 어울리네

이 집에 산지 서른 해가 가깝다. 서울 한복판에 깊은 정원을 가꾸며 ‘고생길 훤하겠다’ 걱정도 됐지만 멈출 수야 없었다. 이끼를 키우기 위해서는 서둘러 굵은 모래를 깔고 밑공사를 새로 다 해야 했다. 골방에서 작업에 빠져있다가 잠시 허리 펴고 둘러보며 휴식과 사색을 취하는 귀한 공간이니 정성을 거둘 수 없었다. 오브제와 공간이 무람없이 어우러지길 원했다. 게다가 대한민국 제일 가는 예술가의 안목을 말해 무엇하랴.

“나는 울긋불긋한 꽃을 안 좋아해요. 푸른 색깔만 원하기에 특히 이끼를 아끼는데 이 녀석이 유여간 까다로워야지요. 이끼는 음의 식물이라 볕을 세게 쬐면 일순 타 버려요. 타지 않게 습도를 잘 맞춰줘야 살지요. 얼핏 자라지 않는 것 같아 보이지요? 습도와 온도에 따라 자라는 정도가 미묘하게 달라요. 사시사철 내가 원하는 정도로 알맞게 기르려면 작품을 한 개도 못 만들 겁니다. 그러니 어느 정도 포기할 줄 알아야 해요.(웃음)”

정원을 가꾸어보면 안다. 얼마나 계절에 민감해지는지. 사철이 뚜렷한 한국 땅이다 보니 여름은 여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가꾸는 법이 다르다. 이끼와 대나무와 은행나무의 법이 각각이다. 어느날은 고개 한 번 못 들고 부부가 종일 잡풀을 뽑는다. 게다가 제대로 할라치면 1시간마다 물을 살금살금 뿌려주며 촉촉함을 유지해줘야 이끼가 잘 자란다. 실수로 물이 고이면 이끼가 썩기 때문에 늘 보슬비 내리듯 해야 하니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오랜 시간 동안 내외는 같은 이야기를 하고 또 했다. “정원은 사람이 부지런히 살기 위해 가꾸는 것이구나” 그래도 정원 덕에 몸과 마음이 건강하다. 쉴 틈 없이 움직이니 두 뺨은 불그레해지고 눈빛은 반짝인다. 새벽같이 일어나 저녁이면 잠이 드니 작업 일정을 어기는 일도 없다.

볕과 물의 정도를 세심하게 조절해 줘야 하는 까탈스러운 선태식물. 그럼에도 이영학은 이끼를 점점 더 사랑하게 된다고 고백한다. 사랑을 준 만큼 표시가 난다는 점이 본인의 우직한 성정에 맞는다. 잘 자란 이끼를 볼 때마다 사람의 힘과 시간의 무게를 다시 한번 배우게 된다. 겨울에도 푸른 빛을 잃지 않는 강직한 점도 마음에 든다. 잠든 듯 조용했던 포자들이 눈을 헤치고 봄을 맞아 다시 올라오면 생명의 싱그러움이 느껴져 덩실덩실 춤추고 싶을 정도로 벅찬다.

무기교의 기교, 최소한의 표현을 담은 작품들

이영학에게 정원이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예술과 직결되는 장소다. 그는 버려진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을 해 왔다. 십수년간 전국을 돌며 낡은 농기구와 살림도구를 주워 모으자니 장돌뱅이 같고 대장장이 같았다. 그의 손에서 장날 엿장수 손에 딸각거리던 가위는 소가 되었다. 어머니 손에 닳디 닳은 다리미를 오리로 만들었다. 연탄집게에 낫을 더하면 한 마리 학이다. 기막힌 눈썰미로 적합한 모양의 도구를 쏙쏙 골라 상상의 힘을 더한다.

 

세월의 풍상이 더한 돌도 그가 오래 천착해 온 소재다. 정원에 놓인 돌들은 가까이 가서 보니 한 점 한 점 놀라운 예술 작품이다. 질박한 질감을 그대로 살린 채 가운데를 네모나 동그라미, ㄱ자로 파 낸 화강암의 고아함이 일품이다. “없는 걸 새로이 만들어내는 건 내키지 않습니다. 본래 있는 것에 조금의 정성을 더하는 최소한의 작업이 즐겁지요. 거추장스러운 것은 지우고 반드시 있어야 할 알맹이만 담는 게 내 방식입니다.”

 

정원이 사람에게 구원이 될 때

가장 좋은 식재료를 골라 몇 시간부터 요리를 준비하고 손님이 도착할 시간이면 미리 문에 나와 있는 성정. 그의 수많은 벗이 증언하듯 이영학은 사람을 참 정성스럽게 대하는 이다. 그럼에도 사람을 만나면 살갑기보다는 ‘디게 틀털할’ 뿐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눈을 맞추지 못하고 수줍음을 감추지도 못하고 맥주를 마셨다)

서울에 오래 살았어도 제 고향 말을 버리지 못하는 경상도 사람이고, 사무적인 사회관계를 어려워 해 잃은 것도 많다. 예술에 관해서는 한사코 타협하지 못하면서도 아이들을 길러내기 위해 예술가로서 말못할 어려운 일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무얼 잘 모르겠고 많은 것이 막막할 때마다 일어서 정원을 내다 봤다. 들숨 날숨을 몇 번 쉬면 다시 돌과 쇠를 만질 수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에게 정원이 구원이 될 수 있다 권한다.

“소비하고, 소비되는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일에 지칠 때 당신만의 정원을 가꾸세요. 자연은 소리를 높이는 법이 없지만 늘 새로운 방식이니, 틀림없이 신비를 느낄 것입니다. 늘 두고 보면 어느새 낙천적이 돼요. 모든 것을 받아들이게 되지요. 겨울이면 이끼가 눈에 덮이지만 봄이 오면 또 파랗게 올라옵니다. 그러니 슬플 일도 우울할 일도 없습니다. 그저 정원에서 매일 아침 숨을 들이마시세요. 작은 구원이 되어줄 겁니다.”



KB프리미엄 맴버십 매거진 <골드앤와이즈>

글 김은성

사진 김재이